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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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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정훈] 과학기술 R&D 혁신, 신뢰문화 조성부터

작성일 : 2023-08-16 작성자 : 통합 관리자



과학기술 R&D 혁신, 신뢰문화 조성부터


최근 국내 연구진의 상온 초전도체 물질 개발 여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초전도체 물질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국내외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검증하고 있으며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발 가능성만으로 세계 각국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관련 주식까지 요동치고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해당 물질이 초전도체가 맞을 경우, 연구진의 노벨물리학상 수상부터 우리나라가 초일류 국가가 되고 관련 기관들의 입지가 올라갈 것이라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담은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다.

일반 국민이 특정 과학기술, 그것도 생소한 물리학 기술개발 여부에 이렇게 뜨겁게 반응하는 지금의 상황은 흔치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은 우리 국민이 지금까지 새로운 혁신적인 기술이 세상을 바꿔왔다는 사실, 그리고 미래의 우리 삶도 이러한 혁신 기술을 통해 바꿀 수 있고 국가 경쟁력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설사 실제 상온 초전도체 개발이 실패로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술개발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왔으며, 앞으로 직면할 더 크고 중요한 문제 해결을 위해 여전히 혁신 기술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의료기술은 인류의 다양한 질병을 치료함으로써 인류의 평균 수명을 연장하였으며, 교통,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전국 일일생활권을 넘어 전 세계 일일생활권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외에도 과거 많은 기술이 우리 삶을 개선시켜왔으며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지어 왔다. 그리고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는 기술개발 노력을 통해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까지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실제 세계 5위에 해당하는 규모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다. 우리는 매년 연구개발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연간 100조원 규모의 예산을 R&D에 투자하였고, 그중 정부·공공재원은 24조원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규모는 4.95%로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러한 연구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덕분에 지금의 한국이 있게 됐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투자 대비 성과를 따져보면 다소 미흡한 수준이다.

2021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성과분석 보고서(KISTEP, 2022)에 따르면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최근 5년간 논문 발간 실적과 국내 특허등록 실적은 각 5.5%, 2.4%로 증가했지만, 해외 특허 등록과 사업화 성과는 각각 2.3%, 6.3%로 감소했다. 최근 정부에서는 이러한 연구개발 투자의 비효율성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 R&D 사업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였으며, 연구비 카르텔 척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 비효율성의 근본적 원인이 연구비 카르텔이라 할 수 있을까?

R&D 예산이 눈먼 돈이라는 지적과 R&D 투자의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은 과거에도 계속 있었다. 나눠주기식의 예산 배분과 연구비 횡령 문제, 출연연 연구진의 다수 연구과제 참여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노력은 많지 않았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R&D 지원 기조를 바꿔왔고, 결과적으로 정부 R&D 예산은 국가의 전략적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 목적보다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지원금 성격이 짙어져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구비 부정 사용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은 과도한 행정업무를 유발하게 된다. 현재 R&D 예산을 집행하는 대부분의 전담기관은 매년 정부 R&D 과제에서 사용한 연구비에 대해 회계법인을 통해 정산을 시행하여 연구관리 규정에 맞게 연구비를 집행했는지 점검하고, 잔액을 회수한다. 그리고 정산 과정에서 부정 사용이 발각될 경우 사용 연구비 환수는 물론 정부 과제 참여 제한, 제재부가금 부과 등과 같은 페널티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 R&D에 참여하는 모든 연구자가 부정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에 국한되는 부정행위를 찾아내기 위해 전담기관별 정산 담당자, 부정행위 발각 시 행정 처리를 하는 담당자가 있어야 하고, 전담기관별 수백 개에 달하는 연구과제별 연구비 점검을 위해 회계법인에 정산을 의뢰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비 집행 점검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인력과 예산, 그리고 시간이 투입되지만, 이는 오히려 연구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연구자들은 규정에 맞는 연구비 집행과 사후 행정 처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실제 연구에 투자해야 할 시간이 과도한 행정업무로 인해 버려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연구과제비에서 이러한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전담인력을 채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연구비 예산은 추가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연구비 집행 관련 업무 외에도 정부 R&D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행정업무들이 많이 있다. 이에 결과적으로는 정말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연구자들은 정부 R&D 과제를 꺼려하게 되고,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연구비 지원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출연연구소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정부 과제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출연연구소 연구자들의 인건비 구조는 정부 과제를 통해 충당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연구 역량과 필요성과는 별개로 여러 정부 과제에 중복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정부 에너지 R&D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유형별 통계를 살펴보면, 2012년 이후로 대기업과 공기업, 중견기업의 참여는 점차 감소하고 중소기업과 비영리기관의 참여는 증가해온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기준 과제 참여 비중을 보면 대기업과 공기업 비중은 10%, 중견기업은 3% 수준이며 중소기업은 37%, 비영리기관은 50% 수준이다. 여기서 비영리기관은 정부출연 연구소와 대학 등을 포함하므로, 결국 정부 R&D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기관의 80~90%가 중소기업과 출연연구소, 그리고 이들을 도와주는 대학교수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정부 과제에 참여하는 연구진들의 연구 역량이 부족하다고 비하하거나, 중소기업 지원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 진행되는 연구과제에서 미래 국가 경쟁력을 견인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개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R&D 혁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R&D 혁신을 위해서는 국가 R&D의 목적성을 재검토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그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들을 구체화하여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그 기반에는 연구자들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연구자들을 연구비 카르텔 혹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이끌어갈 주체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연구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문제점은 정확하게 짚고 바로 잡아야 하지만, 그 문제를 연구계만의 문제로 한정하거나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R&D 혁신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국가 R&D 사업을 목적과 성과 중심 체계로 전환하여 국책과제의 위상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연구자가 정부 과제를 통해 혁신적인 연구성과를 낼 경우 그에 걸맞는 인센티브가 주어질 수 있도록 하되, 대신 연구 부정행위가 발생할 경우에는 지금보다 더 강력한 제재가 가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연구자들은 이러한 사항을 유념하여 주어진 환경 속에서 혁신적인 연구성과 창출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뢰 문화를 바탕으로 목적 지향적이고 성과 중심의 연구 체계를 구축한다면, 국가 R&D 투자의 효율성은 개선될 것이다.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정훈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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