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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박상훈] 과도한 ‘물갈이 영입 공천’이 민주 정치를 어렵게 한다

작성일 : 2022-02-16 작성자 : 통합 관리자

과도한 ‘물갈이 영입 공천’이 민주 정치를 어렵게 한다 글. 박상훈(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2022.02.16


과도한 ‘물갈이 영입 공천’이 민주 정치를 어렵게 한다


글. 박상훈(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정치 개혁, 정치 혁신 주장을 너무 많이 듣다 보니 이제는 진부하게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 우리나라 정당만큼 ‘혁신위’나 ‘비대위’가 자주 만들어지는 사례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다음 달 선거가 끝나면 패배한 정당들은 또 비상한 혁신안을 만들 것이다. 그 내용도 정해져 있다. 물갈이, 세대교체, 중진 용퇴, 인물 영입이 그것이다. 그렇게 해서 선거 때마다 절반 정도의 의원이 교체되고 새로운 인물들이 정치에 들어올 수 있었다. 혁명이나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닌데 초선 의원이 50%를 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당도 국회도 좋아지기보다 나빠져 왔다는 점에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선에서도 ‘3선 초과 금지’라는 정치개혁안이 제출되었는데, 초재선 의원이 정치를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국회의 미래로 여겨지는 듯하다.

경륜과 통치 지식의 축적 없이 국회가 좋아지기는 어렵다. 의원직이란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혜와 현명함이 빛을 발해야 하는 인간 활동이다. 입법과 예산을 주도하기 위해서도 긴 시간의 경험은 꼭 필요하다. 부처의 의도나 이익집단들의 숨겨진 전략을 포착하고 다루는 실력을 키우는 데는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에서 의회는 선례로 움직인다. 의원이 법보다 선례를 어기는 것을 더 부끄러워하는 게 의회다. 10선 상임위원장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하고 최소한 3선 이상급 의원이 의회 구성의 중심을 차지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회는 의원의 절반이 그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매 선거마다 버려진다. 초재선 의원이 75%인 상황에서 3선 이상의 의원은 보기도 어렵거니와 그들도 상임위원장을 하고 나면 국회 안에서 일할 의욕을 상실한다. 행정 관료제를 지휘하고 통제할 국회의 ‘문민통치’ 실력은 늘 수도, 계승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당 정치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이란 공직 후보자를 육성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 정당들은 그 역할을 버린 지 오래다. 그보다는 여론의 주목을 받을 당 밖의 인물을 공천해 선거하는 ‘헤드헌터’와 비슷해졌다. 사회적으로 이미 성공한 엘리트가 정치 영역에도 자유롭게 들어온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강자가 정치적 강자가 되지 않게 하는 것에서 평등화의 효과를 갖는데, 현재와 같은 영입 중심의 공천은 그런 민주적 효과를 없앤다.

선거 승리에만 매몰되는 문제도 있고, 그 자체로 여론을 더 양극화하는 부정적 효과를 키운다. 정치를 배우지 못한 초심자는 여론에 아첨하는 일밖에 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청년 공천의 문제도 많다. 모든 정당이 청년 우대 공천을 해왔지만, 우리 국회는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회(평균 연령 55세) 가운데 하나다, 정당이란 노-장-청의 균형이 중요한 곳이다. 그래야 통치 지식의 집약과 계승이 가능해진다. 이 기초 위에서 정당 안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야지 인위적인 물갈이와 일시적인 영입을 반복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 엘리트 구조를 정치에 이식시키는 부작용만 낳는다. 청년들이 정당에서 일찍부터 정치 경력을 쌓을 수 있게 해서 자연스럽게 공직 후보로 성장하게 해야지, 처음부터 국회의원 후보로 영입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초선으로 끝날 뿐, 정당 정치에 제대로 뿌리를 내린 사례는 거의 없다.

이 모든 일을 ‘국민에게 공천권 돌려드린다.’거나 ‘기득권 내려놓는다.’와 같은 논리로 정당화하는 것은 더 이해할 수 없다. 민주주의란 시민이 필요해서 자신의 대표를 공직에 보내고, 제 역할을 못하면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 시민 대표의 자리를 사적 소유물로 보지 않는 한 공천권을 돌려 드린다는 것은 불합리한 주장이다. 무의식적으로 공직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이런 논리는 민주정보다는 귀족정에 친화적이다. 자신의 특권을 희생하고 포기하는 이타적 행위로 봐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출직 공직이 세상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민주적 권력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시민의 입장에서 영입과 물갈이는 일종의 낭비다. 선출직 공직은 기본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민 사업이다. 적법하게 시민 주권을 위임받은 자로서 공익에 기여하는 보람으로 보상받는 자리다. 4선, 5선, 6선을 이어가는 일은 시민에게 받은 영예다. 그런데 선출직 공직을 어떻게 보기에 늘 영입, 물갈이, 3선 이상 금지같이 전리품 나눠먹기식으로 다뤄지는지 알 수가 없다.

물갈이 공천과 외부 영입은 우리 의회정치와 정당정치에 심각한 부작용을 남겼다. 정치하는 일에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질 지도자는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국회는 교수, 변호사, 검사, 판사, 박사, 전문가 등 이미 성공한 자들에 의한 공직 사냥터에 가까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민주 정치가 좋아지길 기대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