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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정훈] 탄소중립을 위한 첫걸음

작성일 : 2022-02-09 작성자 : 통합 관리자


탄소중립을 위한 첫걸음


글.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새해가 시작되며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번 대선은 후보들 간 정책 경쟁보다는 네거티브 공격이 부각되며 역대 최악의 대선, 비호감 대선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나마 최근 불거진 부동산 문제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며 후보들 간 부동산 공약은 경쟁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기후·에너지 정책은 그 시급성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다른 이슈들에 밀려 국민들에게도 후보들에게도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는 신기후체제 출범과 함께 탄소중립의 당위성이 확산되며 유례없이 많은 국가가 기후위기 대응에 동참한 의미 있는 한해였다. 현재까지 세계 136개국이 탄소중립에 동참했고, 그중 우리나라를 포함한 14개국은 탄소중립의 법제화까지 완료했다. 지난해 8월 발표된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제6차 평가보고서는 지구의 급격한 기온 상승의 원인이 인간 활동임을 강조하고, 2040년 이전에 지구 평균 기온이 1.5oC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여 탄소중립 달성의 시급성과 절대적 필요성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또한, 산업계에는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과 RE100(Renewable Energy 100%)이 확산되는 가운데 작년 7월 EU의 탄소국경조정 메커니즘 관련 입법안 발표가 더해지며 경제·산업계의 탄소중립과 산업 패러다임 전환 요구가 증가했고, 이에 글로벌 기업들의 탄소중립 선언과 기후위기 대응 참여가 늘어났다. 이러한 세계적인 움직임은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을 통해 정점을 찍으며 세계 각국의 탄소중립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COP26의 주요 성과 중 하나는 ‘글래스고 기후 조약(Glasgow Climate Pact)’을 통해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과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공식적으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당초 예상됐던 석탄발전의 폐지가 아닌 단계적 감축에 그쳐 2년 만에 개최된 당사국 총회의 결과치고는 미흡하다는 비판이 많이 있었지만, 중국, 러시아, 인도를 주축으로 한 개발도상국들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COP 합의문에 석탄과 화석연료 관련 목표를 최초로 언급했다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우리나라도 지난 한 해 동안 탄소중립 정책기반 마련을 위해 숨 가쁘게 보냈다. 우리나라는 2020년 10월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탄소중립 대열에 합류하였으며, 작년에는 탄소중립위원회 출범과 탄소중립기본법 통과, P4G 정상회의 개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 2030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상향 등 전례 없이 많은 기후위기 대응 관련 정책과 뉴스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COP26에 참석하여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상향된 NDC와 함께 2050년 탈석탄 계획을 국제사회에 발표하였으며, 46개국이 서명한 탈석탄 선언에 동참했다.

석탄발전은 세계 탄소 배출량의 30.6%(2019년 기준, IEA)를 차지하는 주요 배출원으로, 탈석탄은 탄소중립 달성에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에 2018년 채택된 IPCC ‘1.5oC 특별보고서’에서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전 세계의 석탄발전 중단을 권고하였으며, 영국, 독일, 프랑스 등 EU 내 15여 개 국가에서는 이미 탈석탄을 공식 선언한 바 있다. 특히 2016년 발전량의 40% 가량을 석탄발전에 의존하던 독일은 2년 간의 숙의 과정을 통해 탈석탄 공론화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2020년 7월 탈석탄법을 통과시켰으며, 2038년까지 모든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번 COP26의 탈석탄 선언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탈석탄 시기를 앞당길 것으로 예상되며, 독일도 작년 11월 탈석탄 시기를 2030년으로 앞당겨 발표하였다.

우리나라도 2017년 이후 탈석탄을 골자로 한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탄소중립 선언 이후 작년 8월 탄소중립기본법이 통과될 때까지 탈석탄 시기가 정확히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 이후 COP26에서 2050년 탈석탄을 선언하기 직전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2021년 10월)을 통해 처음으로 석탄화력발전 전면 중단 시기를 2050년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기존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기반으로 석탄발전소 가동수명을 30년으로 가정할 경우 2054년에 석탄발전소 전면 페쇄가 가능한 상황이었음을 고려한다면, 탈석탄 시기가 4년 정도 앞당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에서도 탈석탄 목표 시점만 제시되었을 뿐, 구체적인 탈석탄 경로는 제시되지 않았다. 이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실질적인 탈석탄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 탈석탄은 탄소중립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석탄발전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전력을 기술장벽 없이 저렴하게 공급해주는 수단이었고, 이것이 COP26에서 이미 경제발전을 이룩한 선진국은 석탄발전 폐지를 주장한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석탄발전 폐지에 반대한 이유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함에도 당장의 이해관계에 우선순위가 밀려날 수 있는 것이다. 동일한 이유로 우리나라도 그간 석탄발전에 의존해 경제성장을 이뤄왔으며, 그 과정에서 구조화된 사회적 이해관계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 없이는 탈석탄 경로를 마련할 수 없다.

탈석탄 경로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한 석탄발전을 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한 기술적 방안 마련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과 발생 가능한 사회적 갈등에 대한 고민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석탄발전의 조기폐쇄로 인해 발생하는 좌초자산 규모와 발전사들에 대한 손실 보상 문제, 탄소 비용 증가와 이로 인한 환경 비용 증가 등 탈석탄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공론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탈석탄 과정에서 관련 산업종사자, 지역사회 등이 입을 피해 규모와 신구 산업 간 갈등, 이해 주체 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 마련도 필요하다. 즉, 탈석탄은 단순히 탄소중립을 위한 전제조건 만족을 위해 수치적 목표를 제시하고 그칠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많은 고민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인 것이다.

기후변화는 현재도 진행 중이며,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이행 없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부동산처럼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지만, 지금 탄소중립을 위한 첫걸음을 떼지 않으면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전체가 침수위기에 처한 투발루와 같은 일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를 일이다. 또한 이제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도 그에 걸맞는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국제사회에 탄소중립과 탈석탄 목표를 공표한 지금, 실질적인 목표 이행이 뒤따르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 또한 하락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도 대선 후보들도 다시 한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에 관심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