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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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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정혜윤] 우리가 모르는 일본(2) 정치개혁의 신화와 현실

작성일 : 2024-07-02 작성자 : 통합 관리자



22대 국회가 개원하자 개헌과 같은 각종 법제의 개혁 논의가 쏟아진다. ‘제도개혁’이 지난한 정치 현실을 바꾸리란 기대가 적지 않다. 그런데 새로운 제도의 청사진만 논하기보다 가까운 이웃 나라의 사례를 통해 ‘신화’와 ‘현실’의 간극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지난 30년간 일본정치를 지배한 용어도 ‘정치개혁’이었다. 1980년대 대형 정·재계 부패스캔들이 거듭되고 1993년 38년 만에 자민당 장기집권이 종료되며 제도개혁은 급물살을 탔다.

당시 정치부패와 자민당 일당 지배의 핵심 고리로 지목된 것은 미국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선거제도다.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 당선이 가능하니 정당 간 정책경쟁보다 개인 중심 선거운동을 부추겨 선거자금과 후원조직을 제공하는 파벌 간 이익 배분을 두고 다툼이 치열해지기 쉽다. 정치인은 기업에게 정치자금을 받는 대신 지자체나 국가 보조금을 받도록 해주거나 지역민을 위한 공공사업을 유치한다. 관료는 업계 인허가권을 규제하고 해당 산업을 보호하고 퇴직 후 임원 자리를 보장받는다. 이른바 이익유도(利益誘導)정치가 성행한 이유다. 즉 선거제도가 정치부패, 나아가 불필요한 공공사업 유치와 지자체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수상도 파벌 영수 간 조정자에 가까우니 각 부처(성청) 간 자기 이익만 고수하는 관료와 해당 업계만 보호하려는 정치인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 수상이 되어도 과감한 정책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중선거구제에서는 15%만 얻으면 2~3위라도 당선이 가능하니 일본사회당은 이데올로기 순수성을 유지하는 만년 야당에 만족해 자민당의 독주를 부추긴다는 진단도 일면 사실에 가까웠다.

개혁론자들은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면 파벌 간 이권보다 정당 간 정책경쟁이 중심이 되고 ‘고비용 정치구조’를 개선해 부패도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상의 권한을 강화하면 보다 과감한 개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의견도 지지를 얻었다. 특히 정계개편을 통해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을 유도하면 ‘영국식 양당제, 정권교체 있는 민주주의가’가 열린다는 시나리오는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 전반을 압도했다.

결국 1994년 중의원 선거제가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로 개편되는 선거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이어 1996년에는 성청을 재편하고 수상·내각 권한 강화를 꾀하는 행정개혁이 시작되었고, 2000년대에는 지방교부금과 보조금을 줄이고 지자체 통폐합을 통한 지방 자립도 강화 정책이 이어졌다. 일련의 제도 변화는 일본 정치사회를 어떻게 바꿨을까.

선거제도가 바뀌고 국가의 정당 보조금도 생겨나며 파벌은 약화됐다. 그런데 정치개혁이 가장 큰 목표로 했던 ‘부패 차단’ 효과는 지난 30년간 분명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일본 정치가 과거보다 투명해졌다고 하나 여전히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는 정치 스캔들의 상당수는 돈문제다. 최근에도 정치자금 의혹으로 기시다정권이 휘청이자 2024년 6월 19일 정치자금법이 국회에서 재개정되기도 했다.  

오히려 정치개혁 시리즈가 무너뜨린 것은 전후 일본이 유럽식 복지국가와 다른 형태로 사회를 통합했던 ‘일본식 평등 체제’다. 소선거구제가 도입되며 자민당도 다수파를 유지하려면 농촌의 고정된 지지기반을 다지기보다 도시 무당층의 지지가 중요해졌다. 농촌 표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제도적으로도 내각의 권한이 강화되며 수상은 과감하게 지역 기반 의원의 저항을 억누르고 지방교부금과 보조금을 삭감해 자립도를 높이는 ‘지방분권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노사정 삼자합의체에서 만장일치로 노동정책을 결정하던 지난 수십년의 관행도 무너졌다. 규제완화위원회 같은 수상직속 위원회의 위상이 높아지며 파견법과 노동기준법 개정 등 노동시장의 규제완화 조치가 입법으로 이어졌다. 즉 수상 권한이 강화되며 추진된 과감한 ‘개혁정책’의 주 내용은 실상 약자를 좀 더 보호했던 비시장적 제도와 규범을 바꾸는 것이었다.

전후 일본은 두 축을 통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꾀해왔다. 노동자에게는 연공임금·종신고용·기업복지를 통해 이윤을 나누고, 지방에는 보조금과 공공사업을 통해 중소·영세 기업과 농민의 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보조금이 삭감되고 공공사업 유치가 어려워지며 지방 중소·영세 기업은 줄도산했고 농촌에는 아사자가 발생할 정도로 빈곤 문제가 심각해졌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가 급증하며 2000년대 이후 일본 사회 화두는 ‘격차사회’ 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 네 번째로 평등한 국가, 백만 중산층 사회는 옛이야기가 돼 버렸다.

그렇다면 정치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정권교체가 가능한 양당제는 이뤄졌을까. 1996년 바뀐 제도로 선거가 실시되며 정계개편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전후 혁신의 한 축이자 제1야당이던 일본사회당은 군소정당으로 몰락했고 1998년 일본민주당이 창당해 제2정당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2009년 마침내 정권교체가 이뤄지며 민주당 정부가 탄생한다. 그런데 3년 3개월에 불과한 집권기간 동안 수상만 세 번 교체되는 등 정권 운영은 실패로 끝났다. 민주당은 격차 해소, 아동수당 등의 좋은 매니페스토를 내세우며 일시적 바람을 타고 집권까지 했지만 이질적 비(非)자민세력인 ‘선거용 정당’으로는 국가를 통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2012년 12월 자민당은 집권당으로 복귀했고 ‘아베’라는 역대 최장수 총리가 등장할 정도로 자민당 우위체제 현상은 심화됐다. 반면 민주당은 당세가 급격히 위축되고 이합집산(離合集散)과 정체를 거듭해 양당제는 요원한 이야기가 됐다. 더욱이 일본 정당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유신정당 등 자민당보다 보수적인 정당의 성장, 좌파 진영의 축소 등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1990년대 그렸던 청사진과는 한층 멀어졌다.

혹자는 ‘정치개혁’이라는 상징조작을 통해 사회영역에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부과하고 정치영역에는 전후 혁신의 핵심이었던 사회당이 파괴되고 위기에 처했던 자민당이 정치적으로 복권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법제도가 규정하는 효과는 한정적이고 제도 변화는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지난 일본 정치의 교훈이다. 더욱이 ‘정치개혁’같이 모호한 언어에는 다양한 행위자의 이해관계와 욕망이 뒤섞이기 마련이고 종국에는 힘 관계에 의해 ‘강자를 위한 룰’이 결정·집행되기 쉽다. 지난 30년간 일본 정치는 지나친 제도주의를 경계하고 인간의 자율성과 상상력을 발휘할 풍부한 고민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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