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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매경이코노미스트_전세제도를 다시 생각할 때

작성일 : 2022-05-12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전세제도를 다시 생각할 때


글.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부동산 시장에는 다양한 믿음이 존재한다. 전세제도가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한 계층 사다리라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전세는 경제개발 초기부터 주택금융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국가의 거의 모든 금융자본이 경제개발자금으로 동원되던 시절, 임대인은 전세를 통해 사적으로 주택 구입자금을 융통하였다. 무주택 세입자의 입장에서 전세는 주거비 부담을 덜고 저축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되었다. 21세기 들어서는 모기지론의 도입과 자금조달 금리의 인하로 제도권 주택금융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지만 전세는 여전히 전체 임대시장 계약 형태의 절반을 차지한다. 서울 아파트시장으로 한정하면 이 비율은 무려 70%에 육박한다.


경제개발 시대의 유물인 전세제도가 지금까지도 보편적 임대차 계약 형태로 살아남은 것을 오롯이 제도 자체의 생명력 때문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전세계약은 주택 투자에 따른 수익과 위험에 대해 각 개인이 다르게 평가하기 때문에 성립된다. 사인(私人) 간 거래이므로 정보 비대칭성이나 위험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공적 금융에 비해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임차인은 월세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채무불이행이라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주택정책 당국은 이른바 '깡통전세'의 위험이 커지거나 전세가격이 치솟는 등 시장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서민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전세자금대출을 확대해왔다.


전세보증제도는 일차적으로는 세입자 보호장치이지만 다양한 경로로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공적으로 보증된 전세대출은 세입자를 보호하는 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주택 소유자의 투자 위험을 공적 영역이 일부 떠안음으로써 주택가격에 대한 하방 지지선을 형성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투자 위험의 경감으로 주택은 상대적 안전자산이 되며 그 결과 전세자금을 레버리지로 하는 주택투자를 증가시킨다. 둘째, 전세가격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임차인 개인에게 저리로 제공되는 전세대출의 혜택은 세입자에게 고스란히 귀속될 것이다. 그러나 전세자금대출의 확대는 임대차 시장에서 임차인의 자금동원 능력을 향상시키고 가격 협상력을 떨어뜨림으로써 전세가격 상승에 기여하게 된다. 이로써 임대인 역시 전세시장으로의 유동성 공급에 따른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셋째, 높아진 전세가격과 증가한 유동성, 낮아진 투자 리스크는 다시 주택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실제로 주택가격이 폭등한 2017년에서 2021년의 기간 동안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총 734조원으로 156조원이 증가하였으며 그중 전세자금대출 증가액은 116조원에 달하였다. 과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한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전세자금대출은 연평균 30%에 달하는 증가세를 보였다(이로써 전세대출이 주택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5.8%에서, 2017년에는 11.1%, 2021년에는 24.5%로 크게 상승하였다). 지난 5년간의 주택시장 정책을 투자수요 관리 차원에서만 보자면, 강력한 대출규제를 통해 주택시장으로의 유동성 밸브를 막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전세자금의 명목으로 '갭 투자'에 불을 지피는 마른 장작을 계속 공급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전세가 개발자금이 부족하던 시기에 주택 건설 및 매입 자금을 조달하는 유용한 제도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민간자금이 풍부한 저금리 시대에 과거와 같은 '자산 사다리'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인 간 위험선호의 차이로 성립되는 전세계약 자체와 전세권과 같은 임차인 보호장치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금융당국이 이미 공표한 바와 같이 과도한 공적 자금의 투입은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개인이 사금융이 아닌 정상적 절차에 따라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주택 관련 대출 규제의 합리화와 선진화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 출처: 매일경제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2/05/418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