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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한겨레] ‘조금 더’의 마법에서 풀려날 때

작성일 : 2022-03-28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뉴노멀-미래] ‘조금 더’의 마법에서 풀려날 때





글.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우리 사회는 ‘조금 더’의 마법에 걸려 있는 나라다.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다르게,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인내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이렇게 해야 평판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월급을 더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며, 먼저 승진하고, 좀 더 풍요롭게 산다고 생각한다. 매번 좀 더 하기란 쉽지 않기에 이 마법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


조금 더의 정신이 일터의 문화로 고착되고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회자되지만, 미래를 전망해보면 부정적인 현상이 예측된다. 이미 문제로 불거졌고,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과로사와 과로자살이 단적인 증거다.


사회학자 김영선은 2013년 <과로 사회>, 2018년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2022년 <존버씨의 죽음>까지 펴내면서 줄곧 “실적이 곧 인격”인 강압적 성과주의가 과로사와 과로자살의 원인임을 밝혔다. 그는 조직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고, 쥐어짜고, 태워 넣는다”고 주장한다. 과로하면 몸이 망가지고 가족이나 친구 관계도 파탄나며 홀로 고통을 견디다가 심장 돌연사를 당하거나 자살을 선택한다.


2020년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은 매주 73.1시간 일하고, 하루 313.7개를 배달하며, 점심시간은 달랑 12분이었다. 2021년 국회 용혜인 의원실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경비노동자 과로사를 전수조사한 결과, 과로사한 경비원은 매일 평균 17.67시간을 일했으며, 평균 수면시간은 고작 2.89시간이었다.


과로사와 과로자살은 육체노동자만 겪는 비극이 아니다. 공무원, 대기업 디자이너, 게임 개발자, 방송국 피디가 과로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끊었다. 사회적 규범과 제도가 조금 더의 정신을 강요할수록 노동자들은 매우 위태로운 곳으로 내몰린다.


이 문제는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류의 공멸로 이어진다. 1972년 로마클럽에서 펴낸 <성장의 한계>는 전세계 9억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이 책의 공저자인 예르겐 라네르스는 기후변화를 막지 못해 결국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고백한다. ‘조금 더’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에서 ‘조금 덜’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이 고백의 요체다. 그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이 덜 일해야 몸도 살리고 지구도 살린다고 조언했다.


오래된 미래지만 조금 덜의 사회를 비전으로 내세운 보고서도 있다. 캐나다 과학위원회는 감마 그룹(맥길대와 몬트리올대의 미래연구 연합)과 공동으로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소비사회(Consumer Society)에서 보존사회(Conserver Society)로 전환하는 전략을 연구했다.


이 프로젝트는 보존사회를 실현하는 두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그중 점진적 방법은 자원을 덜 쓰면서도 이전보다 일의 효율성은 높이는 것이다. 그러자면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기업과 대도시에 환경파괴 부담금을 높게 부과하며, 다양한 공유를 통해 빈부격차를 완화해야 한다. 급진적인 방법은 이전과 같은 양의 일을 하면서도 자원을 덜 소비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경제적 성장과 도시의 팽창, 에너지 소비의 확대를 멈춰야 한다. 캐나다는 점진적 방법을 선호했지만, 1980년대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이마저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조금 덜 하자는 주장이 후진국의 성장 기회를 박탈하는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나 기업의 유연한 노동자 해고로 오해되지 않아야 한다. 조금 더의 마법이 실은 미래에 대한 개인의 불안함을 양분으로 강화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개인의 불안을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 이 마법은 절대 풀리지 않는다.



원문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364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