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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중앙일보] 5년 국정과제로는 부족, 15~20년 국가전략 만들어야

작성일 : 2022-05-09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미래를 위한 국가전략


글. 김현곤 국회미래연구원장


‘당신은 인생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해올 때,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새해에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세운다. 월간·주간 목표를 세우고 점검하면서 생활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1년을 넘어가는 중장기 목표나 인생비전을 수립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필자는 운 좋게 54세 때 인생 비전서를 작성해본 경험이 있다. 10여 줄밖에 안 되는 짧은 내용이고 이미 8년 전에 작성한 글이지만, 지금도 그 비전서에 적힌 내용을 향해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놀란다. 어쩌면 이게 눈에 보이도록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한 목표 또는 미래상의 힘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1년 안에 할 수 있는 것은 과대평가하는 반면에, 자신이 10년 이내에 해낼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전략에 관한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 문장인데 정말 공감이 간다. 우리는 이제 100년이 넘는 긴 인생을 살아가게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근시안적인 편이다. 긴 안목으로 먼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건 실제로도 쉽지 않다.


『포사이트』의 저자 비나 벤카타라만 MIT 교수는 한 글로벌 조사를 통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현재보다 미래를 더 많이 걱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로부터 15년을 넘어서는 시점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눈앞의 현안을 해결하기도 바쁜데 10년, 15년 후를 생각하면서 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거꾸로 한번 생각해보자. 만일 1년을 훨씬 넘어 10년 또는 15년 이내에 이루고 싶은 나 자신의 미래상 또는 미래 비전을 명확히 설정해놓았다면 어떻게 될까.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노력한다면 그 미래상을 달성하거나 적어도 그 방향으로 착실하게 전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5년 넘어서는 국가미래상과 국가전략


국가도 마찬가지다. 매 5년 단위로 새 정부가 들어선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해결해야 할 경제사회 현안이 쌓여 있다. 지난 20여년간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새로 들어서는 정부마다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해왔다. 정부 임기 5년 동안 100개나 되는 국정과제들을 추진해야 하니, 해당 정부의 임기를 넘어 5년 이후에도 지속할 중장기 국가전략 수립까지 기대하는 자체가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명확한 국가미래상과 국가전략이 없이 국가 차원의 지속가능 성장과 번영이 가능할까. 한 개인도 중장기 인생비전과 목표가 명확할 때 성공적이고 보람있는 삶을 살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하물며 국가는 어떻겠는가.


마침 내일 새 정부가 출범한다. 앞으로 5년간 수많은 국정과제들을 해결해야 하겠지만,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현안 과제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시급하지는 않으나 중요한 미래과제들을 위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부터는 5년 국정과제와 함께 이번 정부의 임기를 넘어 향후 15년, 20년간 지속할 대한민국의 국가미래상과 미래비전을 수립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최근 국회에서 축적한 관련 경험과 결과를 활용할 수도 있다. 국회는 지난 1년간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정립하기 위한 작업을 해왔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제안으로, 행정부 5년 임기를 넘어 지속할 중장기 국가전략을 제시하기 위해 2020년 11월에 국회 내에 국가중장기아젠더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위원회가 국회 미래연구원 및 60여 명의 전문가와 공동작업을 통해 지난해 말 발표한 ‘미래비전 2037’보고서에는, 향후 3개 정부 15년에 걸쳐 지속추진해야 할 중장기 아젠다와 함께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하였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숙으로, 국가주도에서 개인과 공동체주도로, 단일 가치에서 다원 가치로의 대전환을 제안하고 있다.


국회가 제시한 동 보고서를 참고해서, 새 정부가 정부 임기 5년을 넘어 향후 15년간 지속할 ‘대한민국 미래비전 2037’의 행정부 버전을 출범 1년 이내에 만들어 줄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되면 행정부인 정부와 입법부인 국회가 협치를 통해 향후 15년간 지속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미래상과 국가전략을 공동으로 수립하게 되는 셈이다.


국가전략의 과거와 미래 모습


5년을 넘어 지속한 대한민국의 국가전략이 없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60여 년 전, 30여 년 전에는 다수의 국가전략이 있었다. 1960년대부터 30년 이상을 지속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70년대 초부터 시작한 새마을운동, 교육입국이라는 기치 아래 1960년대부터 지속 추진한 국민교육정책 등이 성공적인 국가전략의 대표적인 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국가정보화전략도 성공한 국가전략의 하나다. 이들 국가전략은 소기의 성과도 확실히 거두었다. 세계 최빈국에서 글로벌 10대 경제강국으로 성장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지식중심 교육, 입시 교육이라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한국은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가지게 되었고 글로벌 디지털 강국으로 굳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5년을 넘어 지속했던 국가전략은 딱 거기까지였다. 지난 20여년간은 5년 단위로 국가전략이 생멸을 거듭해 왔다. 노무현 정부의 혁신 전략, 이명박 정부의 실용·현대화 전략,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의 수명은 각각 5년에 그치고 말았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5년 단위의 국가전략을 새로 제시하면서, 이전 정부의 국가비전과 전략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현상을 반복해왔다.


이제부터라도 바뀌어야 한다. 5년 수명 국가전략은 여기까지여야 한다. 윤석열 정부부터는 새 정부가 임기 5년간 추진할 국정과제와 병행해서 5년을 넘어 15년, 20년간 지속할 중장기 국가전략을 만들고 다음 정부에도 넘겨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꼭 만들어야 할 국가전략의 미래다. 그래야만 정부교체,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한결같이 지속성장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만들기가 가능하다.


국가전략의 미래는 국민발전전략


그리고 미래의 국가전략은 국정운영의 관점을 넘어 국민 삶의 관점에서, 정부 주도를 넘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적극 참여해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랜 기간 정부 주도로 국가발전을 이끌어온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제는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다. 이 점에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나라는 싱가포르와 핀란드다.


먼저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한국처럼 정부가 주도해서 톱 다운 방식의 국가전략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온 대표적인 나라의 하나다. 그러면서도 우리와는 크게 다른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그 예로, 2012년부터 시작한 ‘국민과의 미래대화’를 들 수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이 어떤 미래사회를 원하는지 묻는 ‘우리 싱가포르 대화(OSC·Our Singapore Conversation)’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싱가포르 국민이 원하는 싱가포르 사회의 12개 미래모습을 선정하고 전 국민이 공유하고 있다. ①다양한 형태의 성공을 지지하는 사회 ②누구나 품위있게 나이들 수 있는 사회 ③약자를 돌보는 사회 ④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강한 사회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국민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국가 미래상을 선정하고 공유하는 방식은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만들 때 우리가 꼭 배워야 할 부분이다.


다음은 핀란드. 핀란드의 오랜 교육철학에도 나타나 있듯이, 핀란드가 견지하는 국가전략의 핵심 중 하나는 ‘단 한 명의 국민도 낙오하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라서 학생 한 명 한 명의 각자 다른 재능과 꿈을 키워주기 위해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한다. ‘국민과의 미래 대화’를 통해 싱가포르가 정립한 국가 미래상 중의 하나인 ‘다양한 형태의 성공을 지지하는 사회’를 핀란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실현해오고 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향후 15년, 20년 지속해야 할 대한민국의 국가 전략은 국민 발전 전략을 그 중심에 두어야 한다. 국정운영의 관점을 넘어 국민 삶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주인인 국민 중심의 21세기형 국가전략이고, 국민 공감과 국민 자율을 통해 성공을 이끌어내는 미래의 국가전략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발전 전략의 미래는 국민 발전전략이어야 한다.


원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9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