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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SBS premium] '여성, 초선, 비례'가 주로 몰리고 인기도 없는 상임위원회는 바로 여기

작성일 : 2024-03-23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역사적으로 정치는 노동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현대 민주주의의 출발이 보통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서구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많은 숫자를 토대로 정당을 만들거나 정치에 압력을 가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후에도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지속되어 왔다고 평가됐다.(최장집 교수)

지금도 노동과 정치는 여전히 만나지 못하고 불화하고 있을까. 국회 미래연구원에서 노동과 정치에 관한 한 보고서(정혜윤 외, “한국 노동정치의 거버넌스와 정책과정”, 국회미래연구원, 2023.12.31.)가 나왔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이번 뉴스쉽은 한국에서 노동과 정치가 맞닿는 지점에 대해 다루려 한다.

ㅇ 환경노동위의 특징 - “예산 규모가 작고, 정책 관할권은 크다”

한국에서 노동과 정치가 만나는 가장 중요한 장소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다. 하지만 환노위는 일반적으로 비인기 상임위로 분류된다. 왜 그런 것인지는 다른 상임위와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인기 있는 상임위는 자신이 속한 지역구의 예산을 따오기 쉬운 곳이다. 상징성이 있어서 정책과 관련한 입장 표명을 하기에 유리한 상임위를 희망하는 의원들도 있다. 지역 예산과 정책 관할권의 크고 작음에 따라 상임위를 4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김한나, “국회의원의 정치적 목표와 상임위원회 활동의 정치적 결과”, 2018)

지역 예산을 따내기가 유리해 의원들이 업적을 과시하기 좋은 데다 정책 관할권까지 큰 상임위가 의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대표적으로 국토교통위원회나 행정안전위원회가 있다. 정책 관할권은 작지만 지역 예산 규모가 큰 농해수위나 산자위도 지역 민원과 연계성이 커 인기가 있다. 실제로 21대 국회의원들의 희망 상임위 중 1위는 국토위, 2위는 산자위, 3위는 농해수위였다.(KBS, 법안·상임위·개혁 분야…21대 당선인 300명에게 물었습니다, 2020.5.29.) 지역 예산도 작고, 정책 관할권이 큰 곳은 국방위나 외교통일위, 여성가족위가 있는데 매력 요인이 떨어진다. 다만 외통위의 경우 외교문제나 대북관계 등에 입장을 드러내기에 유리해 3선 중진 이상의 ‘거물 정치인’이 선호하기도 한다.

환노위는 어떨까. 지역예산 규모로는 상임위 중 9번째로 작은 편이고, 정책 관할권에서는 4위로 큰 편이다. 보건복지위나 기획재정위와 비슷한 ‘포지션 상임위’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상임위는 지역에 국한된 개발 이슈보다 자신의 입장을 전국적으로 드러내고 주목받기를 원하는 의원들이 선호한다.

즉, 지방 의원보다는 수도권이나 대도시 의원, 지역구 의원보다는 비례대표 의원이 선호할 수 있다. 하지만 비례 의원이라도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을 원할 경우가 많은데 환노위처럼 지역예산 규모가 작은 상임위는 선호하지 않는다. 20대 총선 당선자 기준 희망 상임위 순위에서 환노위는 9등을 차지해 하위권이었다.

ㅇ ‘젊은-여성-초선-비례’ 의원이 많다

비인기 상임위인 환노위에는 그렇다면 어떤 의원들이 갈까.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크게 원하지 않지만 정당 내에서 권력 지위가 낮아서 강제로 배정된 의원들, 노동 관련 경력이 있어 환노위에 전문성과 소신을 가지고 지망한 의원들. 두 부류의 의원들이 섞인 결과 국회 전체보다 환노위에 배정된 의원들은 나이가 젊고, 여성이 많고, 다선보다는 초선 비율이 높고, 지역구 의원보다 비례 의원 비율이 높다.

노동 관련 경력을 통해 초선 비례의원으로 환노위에서 활동했지만,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되지 못하고 사라진 경우가 많다. 환노위가 지역구 예산 민원을 해결하는 데 유리하지 않고, 환노위 활동이 의정 경력을 이어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환노위에서 소명의식과 전문성을 가지고 의원 경력을 이어온 사람들은 소수지만 존재한다.

노동법안에 대표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을 나열해 보면 대부분 민주당 계열(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많다. 91건 발의로 압도적으로 많은 노동법안을 대표발의한 한정애 의원의 경우 한국노총 출신으로 19대 국회에 비례대표 의원으로 시작해 지역구에서 3선까지 하며 살아남은 케이스다. 그 외에도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는 박광온(3선, 원내대표 역임), 홍영표(4선, 원내대표 및 환노위원장 역임), 김상희(4선, 국회 부의장) 의원 등 굵직한 중진들이 환노위에서 활약하며 노동법안을 발의했다.

보수정당 계열(현 국민의힘)에서는 노동법안 발의자 상위권 의원 중에서 임이자와 김성태 의원이 한국노총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해 다선 의원으로 살아남았다. 그 외에는 초선 비례로 환노위에서 활동했지만 대부분은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다. 진보정당 계열(현 녹색정의당 등)에서는 민주노총 출신의 심상정 의원이 비례대표를 거쳐 4선을 했고, 나머지 의원들은 환노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초선 비례에 그쳤다.

환노위에서 활동한 의원의 구성을 봐도 알 수 있듯, 노동법안 다수는 민주당 계열 의원들이 발의했다. 19대 국회 이후에는 민주당 계열 의원들이 여당이 됐을 때나 야당일 때와 관계없이 보수정당 계열 의원들보다 2~3배 많은 노동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노조와 관련되어 있고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노조법보다는 근로자 개인의 처지 기준을 마련하는 근로기준법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비중이 컸다.

보수정당 계열 보좌관(보고서에서 인용)
“집단법(노조법)은 국민의힘에서 하기가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국힘에서 그래도 친노동인 척하면서 할 수 있는 법이 개별법(근로기준법) 쪽밖에 없어요. 개별법 쪽에서도 돈 별로 안 쓰고도 할 수 있을 만한 거. 그리고 누가 봐도 이놈은 나쁜 놈이다,라고 해서 국민 여론에 얹혀서 갈 수 있을 만한 거.”

진보정당 의원들의 경우 의원의 숫자 자체가 적지만 환노위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많은 노동법안을 발의했다. 특히, 노동조합과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노조법과 관련된 법안 비율이 높은 점이 진보정당의 특징으로 나타났다.

ㅇ 한국노총은 거대 양당으로,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으로

총선마다 각 정당이 내는 비례대표 후보들 중 노동계 몫이 한두 명씩 항상 존재한다. 보수정당 계열이나 민주당 계열, 진보정당 계열 할 것 없이 그러하다. 노동계로 분류하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출신을 살펴보면 정당별 차이가 존재한다.

국내의 대표적인 두 노조 내셔널 센터 중에서 한국노총은 보수정당과 민주당, 두 거대 양당을 통해 국회에 진입해 왔다. 보수정당에는 임이자, 김성태, 김영주(민주당에서 최근 국민의힘 입당), 장석춘, 최봉홍 등, 민주당에는 김경협, 한정애 등이 있다. 반면 민주노총은 거대 양당과 관계를 맺지 않고, 진보정당을 통해서만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경향이 있다. 멀리는 권영길, 단병호, 홍희덕이 있고 21대 국회에는 심상정, 류호정, 강은미, 이은주 등이 있다.

오는 22대 총선에서도 각 당은 노동계 인사를 비례대표 당선권에 배치했다. 한국노총 출신으로는 민주당 계열에 박홍배, 보수정당 계열에 김위상 후보가 존재한다. 민주노총 출신 인사는 진보정당인 녹색정의당에 나순자, 이보라미 후보가 가장 앞선 순위(1,3번)로 배정됐다.

이번 총선에서 특이한 점은 민주노총 출신이 민주당 계열의 정당(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로도 배정됐다는 점이다. 전종덕과 김영훈 두 후보가 그러한데, 전종덕의 경우 진보당이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면서 비례 후보가 됐다. 김영훈의 경우 원래 진보정당 계열(정의당)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계열의 비례 후보가 됐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노총이 협력 대상을 진보정당에서 민주당까지 범위를 넓혔다기보다 ‘위성정당’을 만들어낸 선거제도, 진보정당이 스스로의 힘으로 서 있지 못하고 민주당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상황, 진보정당 인사가 민주당으로 ‘전향’하면서 생겨난 상황으로 보인다. 즉, 이번 총선 국면에서 나타나는 민주노총 출신의 민주당 참여는 민주노총의 영향력 확대가 아닌 진보정당의 소멸 위기를 보여주는 징후로 읽힌다.

ㅇ 낮아지는 가결률, 나아가는 노동권

최근으로 올수록 국회에서 의원들이 발의하는 법안은 많아진다. 하지만 실제로 통과되는 가결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노동법안은 어떨까. 노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만큼, 노동법안이 다른 법안들보다 통과되는 비율이 적다. 특히 18대 국회(2008년~) 이후부터는 노동법안 가결률이 매번 전체 법안의 가결률보다 크게 낮아진 경향을 보인다.

노동과 정치가 만나는 국회 환노위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상대적으로 당내 권력 지위가 약한 ‘젊은-여성-초선-비례’ 의원들이 배치되고, 노동법안의 통과 비율은 해가 갈수록 낮아져 20대 국회에서는 5%에 불과한 수준이 됐다. 양대 노총 중 한쪽인 민주노총은 거대 양당과 협력하지 못하고, 오직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국회에 진출해 왔는데 그마저도 21대 총선에서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노동과 정치는 여전히 제대로 손을 맞잡지 못하고 있거나, 오히려 날이 갈수록 불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대 국회 환노위에서 새롭게 제정된 법안을 보면, 노동-정치가 아무런 희망이 없거나 역할을 하지 못한 건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13대 국회에서는 ‘장애인고용법’을, 16대 국회에서는 ‘청년고용법’, 17대 ‘특수형태근로자법’, 18대 ‘학력차별금지법’, 19대의 ‘감정노동자법’, 20대의 ‘직장내괴롭힘법’, 21대 국회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노사가 서로 양보하기 힘든 갈등적인 사안을 다루는 국회 환노위지만, 여론과 시민사회의 요구가 강하게 있으면 정치권이 그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13대부터 21대 국회까지 긴 흐름으로 봤을 때, 국회 환노위는 시민과 노동계의 요구에 호응해 일할 권리를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만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참고자료
- 이상직·고민지·강경희 외, “한국 노동정치의 거버넌스와 정책과정”, 국회미래연구원, 2023.12.31.


출처: SBS premium

https://premium.sbs.co.kr/article/9ageNAK8o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