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기고   >   미래칼럼

미래칼럼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외부 전문가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강선영]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된 대한민국을 꿈꾸며

작성일 : 2024-07-17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제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한 달이 넘게 지났다. 그러나 개원식이 열리지 못한 탓에 나는 아직 선서도 하지 못한 국회의원이 되어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국회의원임에도, 아직 국민께 제대로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힘차게 달려나가야 할 국회가 여전히 출발선에 멈춰있음에 무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과 제2항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염원은 보수나 진보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는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말로만 외친다고 해도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하기에, 자유와 평등이 부재한 민주주의는 다수의 동의에 의한 소수에 대한 폭력으로 비화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 자유주의 정신이 부재하고 권위주의와 결합하면 참된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전체주의나, 대중독재, 파시즘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민주적인 절차로 집권한 권력이 독재적 권력을 휘두르는 듯한 모습을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에서 보리라고 상상한 국민은 없을 것이다.

참된 민주주의에서 다수당은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의 지지자들도 국민의 일원이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소수정당 그리고 행정부와 협치하여 국가의 번영과 안전 보장을 위해 성숙한 민주주의의 품격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 소수당도 계속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보장되고, 특정 권력 또는 특정 정당이 전권을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한 여러 제도적 견제장치와 국회의 관례가 존재한다. 이러한 미덕은 우리 정치에 흐르는 민주적 전통이기도 하다.

참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견제장치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삼권분립이다.

지난 7월 1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 미국 사건(Trump vs. The United States)에서 대통령의 면책특권(immunity)에 관해 중요한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요지는 삼권분립의 취지에 따라 대통령의 행위는 공적 행위(official acts)의 부문에서 면책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2021년 1월 6일, 당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연방 의회 의사당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 수천 명이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승리한 결과가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펴며 바이든 승리를 공식화하는 상·하원의 당선 인증 절차(선거인단 집계)를 막기 위해 의사당에 몰려가는 소동이 일어났다.

앞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1·6사태 며칠 전에 “이번 대선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었다”며, “오는 1월 6일 워싱턴 D.C.에서 만나자”라는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이를 근거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의사당 사태를 선동했다는 혐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대통령의 공적 행위에 관한 면책 특권은 더욱 폭넓게 인정되게 되었고, 의사당 난입 사주 사건뿐만 아니라 트럼프에게 지워지던 여러 형사적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었다.
채상병 특검을 주장하는 이들의 말처럼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특정인을 구하고자 수사(실제 수사권이 없어 수사라는 단어 사용은 부적절하지만)에 개입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당 난입’ 선동 혐의와 비교했을 때 과연 무엇이 더욱 공적 행위에 해당하며, 통치권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우리는 트럼프에 대한 미 사법부의 판단을 보면서 삼권분립을 지키려는 선진화된 민주주의 정신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물론 예비역 장군의 입장에서 부하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의 주요 책임자에 대해서는 엄중히 처벌하여 한 가정의 소중한 아들이자 군 복무를 성실히 수행하다 순직한 채상병 고인의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점은 적극 공감한다.

채상병 사망사건의 원인을 찾아 책임있는 자를 처벌하며 군에서의 사망사고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다. 채상병 순직 사건이 더 이상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2008년 광우병 사태,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도 본질에서 벗어난 음모론으로 인해 실체적 진실이 왜곡되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하였으나 결국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채상병 순직 사건이 본질에서 벗어나 정치 쟁점화됨으로써 국론이 분열되고 민생에 힘써야 할 국회의 본래 사명이 도외시되는 현실은 매우 유감스럽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한다. 헌법에 민주공화국임이 천명되어있고 이를 선거를 통해 구현한다고 하더라도 상호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개인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은 정치적, 이념적 선동에 의해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개인은 왜곡, 편향에 무감각해져서 자신의 선택권이 보장되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 개인이 공정한 언론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개인과 사회에 최선이 될 선택을 온전하게 할 때만 진정한 자유가 보장된다.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며 국가나 정당이 시민을 선동하고 탄압하고 감시하는 사회나, 특정 개인을 받들어 모시는 사회는 당연히 민주적인 사회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는 제도지만, 한 번 민주주의가 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수준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독재 정권이 들어선 나라는 세계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민의 감시 안에서 올바른 민주주의를 이루겠다는 정치인들의 선한 목적이 없이, 대중주의와 결합한 의회 독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22대 국회를 보면서 느낀다.

1987년 6월 10일 민주화 항쟁이 벌어진 남대문과 신세계 거리에서 나는 당시 숙대 행정학과 학생회장으로 시위에 참여하였다. 당시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내기 위해 대학생들을 위시한 화이트칼라 시위와 시민들의 참여는 민주화를 향한 대한민국의 열망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1987년 6월 29일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의 대표였던 노태우가 전격적으로 개헌을 받아들임으로써 대한민국 대통령 제도는 오늘날의 직선제, 5년 단임으로 정착되었다.

민주주의는 권력 편의주의에 뿌리를 내린 다수당의 횡포와 정치적 급진주의를 근간으로 보복과 선동을 일삼는 것이 아니다. 삼권분립이 지켜지고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며, 의사소통과 협치를 바탕으로 이상과 현실이 조화된 자유민주주의의 형태로 발전되어야 한다.
물론 의회가 견제와 균형이라는 본질을 잊지 않고 행정부와 사법부의 전횡을 막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4.19, 5.18, 6.10 등 기억할 많은 민주화의 여정에 22대 국회도 동참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기고를 통해서나마 대한민국 국민께 선서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 선서를 행동으로 지켜나가는 국회가 되길 소망한다.

강선영

현) 제22대 국회의원(국민의힘 비례대표)
현)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현) 국민의힘 외교안보특별위원회 간사
전) 숙명여자대학교 안보학 교수(석좌교수)
전) 대한민국 육군 항공작전사령관 겸 항공병과장


위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에 해당하며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작권 정책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전글 다음글
이전글 [강경숙] 희망고문 없는 공정하고 균등한 사회적 선진국, 교육권 보장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