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로 실력과 품격을
품격과 실력의 대한민국
‘인류 사회 번영과 화합을 주도하는 대한민국’- 우리가 바라는 2050년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30여 년 동안 사회 모든 분야에 걸친 업그레이드가 진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실력에 더하여, 지구촌의 책임있는 리더로서 품격을 갖춰야 한다.
코비드19 판데믹의 혼란이 진정되면 과학기술 제 국면은 새롭게 정비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의 존재 이유, 핵심적 가치 등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장기적 전망과 전략을 포괄하는 비전을 설정하여야 한다. 과학기술에 소요되는 자원을 동원하고 배분하는 공공 거버넌스 및 민간 경영 체제 역시 과거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이 중차대한 과업을 수행할 뛰어난 정책 집단이 있어야 한다. 넓고 긴 안목으로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조직화하고 실천하는 정치가, 정책담당자, 과학기술 연구개발자, 기업가 등의 리더들이다. 우리는 단기간에 산업사회로 진입한 이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기술의 다음 단계 도약을 바랬고, 이를 주도할 리더에 대한 주문은 간절한 바 있었다. 아쉽게도 지난 20여년 동안 과학기술 정책 리더십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러한 정책 전문 집단이나 개인이 부족했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사실 지난 압축 산업화와 정보 사회화는, 불충분한 지식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열정과 열심을 가진 정책 집단이 이끌어 왔다. 미래 우리 사회 업그레이드, 발전의 키는 이들 정책 리더십의 역량을 키우고 안목을 높이는 것에 달려 있다. 공동체 발전의 바탕인 과학기술에 대하여 고민하고 배우는 능력, 경험을 쌓은 우수한 정책 집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어떤 역량과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 논의해 보자.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
과학기술 정책 리더는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넓게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알고 미래를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 특정 시각이나 입장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좌우와 조화를 이루는 세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개될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바탕으로 지향해야 할 비전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우리 미래를 이끌 핵심이라는 것을 설득할 논리와 추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만으로’가 아니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타 분야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하는 큰 그림 안에서 분야별로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그 정책의 정당성을 전문가들이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서, 국민들이 이를 수긍하고 지지를 보내도록 하여야 한다.
정책 체제에 간여하는 이들은 개인 차원에서 각자 책임과 권한을 행사한다. 직책에 따라 결정권이 규정되고, 논리상 거기에 맞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점에서, 비전은 정책 집단 전체의 협업에 의해 만들어진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되, 주위의 관계자 - 조직 구성원, 이해 당사자, 참관자 등과 공조 하는 것이다. 거기에 외부의 조언과 비판을 받아들이면서 비전의 각 부분을 구성해야 한다. 이와 같이 협업을 전제로 하지만, 비전의 최종 결정자 – 특히 대통령 – 가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 있다. 다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택을 감당하는 실력과 경륜이 최고정책결정자에게 필요하다.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리더
과학기술 정책 리더는 세상의 변화를 직시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비전은 물론 추진 전략 수립에서도 중요한 전제는 상황의 가변성이다. 예상되었던 일들이거나, 예상 밖의 것이거나를 불문하고 도전적 이슈들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바람직한 변화는 수용하고, 장애와 에러를 수정하는 회복탄력성이 작동하여야 한다. 갑자기 닥친 사태에도 현상의 본질을 판단하는 냉철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대하던 바와 괴리가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수정할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것이 정책 리더 존재의 정당성이다.
지금 코로나19 판데믹은 그 전조가 이미 있었다. 이전의 몇 가지 감염병 유행이 전지구적 재앙을 예고했던 것이다. 전문가들도 그 잠재적 파괴력에 경고를 발해 왔었다. 작은 사태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했느냐에 따라 큰 사건에서 대응은 확연히 달라진다. AI, 양자컴퓨팅 등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들은 엄청난 충격파를 가져올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예기치 못한 부작용 또한 막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 해당 분야 종사자들은 위험 보다 긍정적 가능성을 높게 전망,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측면의 전개 가능성을 가감없이 평가하는 자세와 판단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일을 나누고 맡기는 리더
정책 리더는 정책의 제 차원에서는 물론 과학기술 추진 단계별로도 일을 적절히 나눠야 한다. 해당 과업에 대한 자율적 업무 수행을 전제로 결과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 분야별로 주체는 다양하다. 인력, 조직, 재원, 성과, 생산 등 각각 다른 차원의 과업이 있다. 분야별 역할과 운영 형태를 파악하여야 한다. 이것은 구체적 업무에 간여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분야별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각각의 특성과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 분야별로 할 일을 배분하되, 전체 차원의 조망, 조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일을 정책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경우, 출연연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산업화 시기 출연연은 우리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디딤돌이었다. 앞으로 이들의 역할은 달라져야 한다. 출연연이 가지고 있는 시설, 하드웨어는 물론 인적 자원, 경험 등은 장시간에 걸쳐 축적되어 온 것이다. 이 시스템이 국가가 필요한 과업을 수행하도록 책임을 부여하는 전제는 자율성의 보장이다.
대학의 역할 역시 새롭게 설정되어야 한다. 전통적 교육, 연구 방식과는 다른 과감한 변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응 비용 안에서 성공적인 전환을 위한 현명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기업은 과학기술의 과실을 사회가 누리고 그 이익을 공동체가 향유하게 만드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정부, 대학, 연구계와 기업 간의 교호 작용을 위한 유기적 연계,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가 작동되게 하여야 한다.
주도하기보다 조장하는 리더
정책집단, 담당자는 정책의 밝은 면을 강조하면서 국면을 주도하고자 한다. 그러나 실패와 좌절 가능성은 항상 있다. 정책이 잘되고 있고 옳다고 믿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류 가능성, 실패 가능성을 항상 인정하여야 한다. 특히 정책 상층부에서는 부정적 조짐이 보일 때도 자기 확신, 고집 등에 의해 밀어 부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일단 판단하고 정한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외부에서 견제, 조언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비판 장치 여부와 상관없이, 에러 가능성에 대해서 개방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정책 자체는 물론, 구체적 행위에서도 비판적 의견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류 정책 집단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은 다음 수십 년 동안 국내외 모든 상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쟁의 핵심은 과학기술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연간 연구개발 투자액이 세계 5위를 기록할 만큼 우리는 엄청난 성취를 이뤘다. 외형상 놀라운 지표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과학기술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할 것인가에 ‘생존’이 걸려있다. 과학기술 정책 집단은 산업계, 언론, 시민단체, 학계, 정부를 비롯하여 사회 전체가 바라는 바를 알아야 한다. 또한, 국가 장기 비전이 각 분야에 제대로 수용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하여야 한다. 어떤 성과를 바탕으로 생존을 위한 실력을 쌓고, 소프트파워로 인정받으며 품격을 높일 것인지 찾아내야 한다. 이일을 감당할 일류 정책 집단을 우선 만들어야 하며, 그들의 리더십과 헌신을 기대해야만 한다.
송하중
송하중(宋河重)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서울대 금속공학과, 하버드대 정책학 박사
前 한국정책학회 회장
前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경희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원자력정책포럼 회장
한국과총 정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