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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제국 : 식량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음모 그리고 그 대안 표지

식량의 제국 : 식량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음모 그리고 그 대안
  • 저자 : 제니퍼 클랩
  • 출판사 : 이상북스
  • 발간일 : 2013



식량의 제국 : 식량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음모 그리고 그 대안



김은아(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필자는 보릿고개는 말로만 듣고 자란, 일명 “배부른 세대”에 속한다. 그래서 매일 “일용할 양식”이 있는 것이 새삼스럽게 감사할 일이 아니며, 식사전·후 기도는 가끔 하더라도 내용에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날이 다시 올까? 워털루 대학의 환경자원학부 교수인 제니퍼 클랩은 『식량의 제국』에서 그런 미래를 걱정의 근거로서 현 세계식량경제의 변동성(volatility)과 취약성(vulnerability)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한다.

  저자는 풍요의 시대에서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식량 전쟁이 어떤 정치·경제적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지를 크게 네 가지 동인(선진국의 식품시장 투자, 불공정 무역, 초국적 기업, 금융상품화)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세계식량경제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는 대안적 노력으로서 공정무역, 식량주권 운동, 세계식량정의운동을 소개한다.

  현 상황의 시작은 이러했다. 19세기 후반부터 북미와 유럽에 도입된 산업형 농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농업보호주의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다양한 정책의 결과 농산물이 과잉 생산되었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전후 식량원조 및 해외 시장 확장으로 이어진 것이 현재의 세계식량경제의 근간이 되었다. 기아 사태를 막기위한 선의로 인식되는 인도주의적 식량 원조의 초기 모델이 선진국의 잉여 생산물 처분 모델이었으며, 여기에 냉전시대 비공산국가만을 원조 대상으로 차별성을 둠으로써 지속 가능한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도모했다는 저자의 설명은 음모론으로 몰기엔 개연성이 높게 보였다.

  이후 세계식량경제는 WTO를 통하여 개도국 대상 농산물 무역 자유화, 관세 감축정책 등을 제도화 하였고, 그 결과 선진국은 시장 확장에 유리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또한 초국적 농식품기업은 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중간지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현재 유전자변형농산물(GMO) 종자 개발 및 가격 조정 등 생산·가공·소비 전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책이 작성된 당시 기준으로 몬산토, 듀폰, 신젠타 세 개의 초국적 기업이 전세계 상업적 종자 시장의 47%를 차지하고, 2007년 기준 몬산토가 GMO 종자 재배면적의 87%를 장악했다는 통계 수치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더욱 위협적이면서 신선하게 다가왔던 시각은 식량의 금융상품화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가격조정 역할이 미미해지는 반면 투기자에 의해서 2007년 식량가격파동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달러환율과 연동된 농산물 원자재 시장, 농산물 파생상품 거래, 외국인 토지 취득, 바이오 연료 투자 등 이제 농산물은 더 이상 식품 그 자체의 의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의 흐름의 매개체로 추상화되고 있어 농산물 시장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그대로 끌어안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저자는 식품시장 세계화의 부작용은 비단 경제적인 불균형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환경파괴 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식량생산성 향상이라는 목적 하에 보급된 산업형 농업 방식은 유전자조작된 종자 확산, 농약 및 화학비료 과다 사용으로 인한 토양오염 등 장기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저자는 지역환경에 적합한 토착 종자 및 영농법을 사용함으로서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대안적 방향을 소개하였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현 세계식량경제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식량 전쟁’이라는 자극적 단어 안에 자리하고 있는 가장 큰 불안은 단일 기업, 단일 국가의 시장 점령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떠한가? 우리나라가 초국적 농식품기업에 의존하는 비중은 얼마인가? 식량의 금융상품화가 심화될 경우 우리나라는 가격변동성에 얼마나 취약하며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등 책을 읽는 내내 불안한 질문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저자는 비관적인 측면에서의 현 상황 설명에서 책을 마무리 하지 않고, 긍정적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저자는 거대한 자본의 힘에 비해 미미할 수 밖에 없는 저항운동의 움직임과 소비자의 선택에 희망을 걸고 있는 듯 하다. 2012년 빌게이츠가 빌&멀린다 재단 연례서한에서 “농업혁명”을 향후 목표로 선언했는데, 필자는 이것이 초국적 농식품기업의 독점적 지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것인지 궁금하다. 종자개량과 디지털화로 소규모 자영농의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는 “농업혁명”이 부디 건강한 세계식량경제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