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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김유빈] 지역주도 R&D 실현의 조건

작성일 : 2022-08-16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지역주도 R&D 실현의 조건 글. 김유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2022.08.16




지역주도 R&D 실현의 조건



새 정부 과학기술정책의 주요 기조는 ‘민간’의 역할 강화이다. 과학기술 5대 강국 도약을 위해 민간이 주도하는 국가 과학기술 시스템으로의 재설계를 통해 R&D 투자 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이 ‘지역주도 연구·개발(R&D) 강화’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최상위 법인 과학기술기본법에서는 지방과학기술진흥을 위한 종합계획 및 시행계획 수립과 추진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제5차 지방과학기술진흥 종합계획(’18~’22)이 추진 중이며, 지역주도 혁신성장을 목표로 지자체의 주도적 R&D 기획과 관리 역량 강화를 통해 지역별 특성화된 정책 마련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사전 기획 연구가 추진 중인 제6차 지방과학기술진흥 종합계획(’22~’26)에서도 지역별 특성화된 R&D 정책 수립 등 지자체 역할 강화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역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총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으며, 좋은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는 청년의 규모는 더욱 확대되어 수도권과 지역 경제 활동의 편차가 심화하고 있다. 그간 지역 경제를 지탱했던 제조업의 비수도권 비중은 60%에 달하고 있으나, 제조업 경기의 전반적 불황은 그나마 있던 지역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지역 산업의 전반적 위기는 고급 과학기술인력이 지역을 더욱 외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의 지식 인프라를 책임져야 하는 지역 대학은 신입생 대거 미달 사태와 기존 재학생의 수도권 이탈 등으로 부실화 및 경쟁력 감소 위기에 처해 있다.

지역의 이러한 위기 돌파를 위해 균형발전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적 시도가 계속되고 있으나 여전히 한계를 드러낸다. 일례로 균형발전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자체별로 희망하는 R&D 수요를 조사해 본 결과, 대다수의 지역이 바이오, ICT, 첨단소재, 정밀기계 등 소위 뜨는 분야를 유치하길 희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역 R&D 실태조사를 보면 이런 분야는 결과적으로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의 투자 집중 경향이 뚜렷하여, 사실상 정부나 민간 투자 유치를 위해 지역과 지역 간 과열되고,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역 R&D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연구중심대학, 지역거점 국립대학이 수행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연구 주제 분포를 보면 정보통신, 보건의료, 기계 등에 집중되고 있어 앞서 수요 조사의 경향과도 일치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지역주도 R&D가 강조되는 정책 기조와는 상반되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주목해 볼 부분이 있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주요 통계를 제공해주는 NTIS(National Science & Technology Information Service)를 통해 주요 광역시별 국가연구개발사업 수행 분야를 살펴보면, 앞서 공통적으로 집중되고 있는 연구 분야 외에도 기계, 농식품, 뇌과학 등 지역별 특화 가능성이 높은 분야들도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특화 분야를 더 발굴하고, 지역 대학, 연구소, 기업이 발굴된 특화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역혁신 정책의 방향 수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지역의 지식 인프라 및 연관 산업의 체질 개선 기회를 확대하여, 궁극적으로 지역 경쟁력 제고와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지역 현안 또는 지역 강점을 활용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이를 R&D와 연계시킬 수 있도록 정책의 기획과 집행 과정에 지역 자율권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 농업 위축, 수질 개선, 새로운 교통수단 확보, 디지털 전환에 따른 지역별 격차, 에너지 전환에 따른 지역 인프라 구축 등 지역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양한 관점의 접근이 가능한 현안들이 산재해 있다. 또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소, 양자, 우주‧항공 등 국가 전략기술이 강조되면서 관련 혁신시스템의 구축을 위한 지역 클러스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클러스터 정책은 산업정책, 과학기술정책, 지역개발정책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특히 지역개발정책의 수립과 집행 주체로서 지자체 역량 확보가 클러스터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따라서, 지자체 및 지역 씽크탱크를 중심으로 지역 문제와 지역 강점을 적극 활용하여 관련된 연구기획을 확대하고, 기획된 정책이 원활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재원 확보, 재정 편성 권한 등 지방 정부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 대학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대학은 지역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 기회를 창출하여 지역 기업과 협력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지식 생산, 인재 공급 등 지식 인프라의 기반이다. 지역 경쟁력 확보에 있어 대학의 전략적 접근이 중요한 이유이다. 일례로 최근 반도체 인력 양성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삼성, SK 등 반도체 대기업과 주요 수도권의 상위권 대학은 계약학과 형태로 시스템 반도체 학과 설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뿐 아니라 전‧후공정에 관여된 수많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중소, 중견기업들이 생태계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주로 지역의 산업단지와 클러스터에 입주한 이들 업체는 여전히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 대학이 이들 기업과 활발한 산학협력을 통해 그 과정에서 양성된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지역 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협력 과정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지리학자 마이클 스토퍼(Michael Storper)는 그의 저서 “The rise and fall of urban economies”에서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의 발전 과정을 비교 분석한 바가 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지역 특화 분야에서의 경쟁력 확보, 경쟁력 유지를 위한 지속적인 인적 자원 공급, 그리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가 오늘날 샌프란시스코의 경쟁력 창출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향후 수립될 제6차 지방과학기술진흥 종합계획은 지역 혁신정책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이벤트이다. 혁신 과정에서의 지역 리더십 강화를 통해 특화된 분야를 중심으로 대학, 연구소, 기업 간 다양한 혁신 활동들이 확대될 수 있도록 관련 계획을 정비해야 한다. 새 정부가 강조하는 ‘지역주도 R&D’가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김유빈

김유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現 한양대학교 과학기술정책학과 겸임교수
前 국가핵융합연구소 혁신전략부장
前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기술전략팀 책임연구원
한양대학교 과학기술정책학과 행정학박사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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