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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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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정훈] 탄소중립 기본법에 대한 소고

작성일 : 2021-10-13 작성자 : 통합 관리자


탄소중립 기본법에 대한 소고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기후위기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올해 8월에 발표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1.5˚C 특별보고서 발표 당시 예상했던 지구평균기온 상승폭 1.5˚C 달성 시점이 2050년에서 10년이상 빨라져 2040년 이전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결과는 2050년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시나리오에도 적용되는 결과로 기후위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2050 탄소중립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한국이 탄소중립 대열에 동참할 때까지만 해도 탄소중립이라는 도전적인 목표설정이 적절한가에 대한 지적도 있었지만, 이제 탄소중립은 전 세계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지켜내야할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후위기 가속화를 대비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입법과 정책을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탄소중립 선언 이후 국내외적으로 탄소중립 법제화에 대한 요구들이 있어왔으며, 국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탄소중립을 반영한 입법안들이 다수 발의되어 왔다. 발의된 입법안들은 올해 초부터 환노위 소위를 거쳐 통합법안으로 심의를 진행하였으며, 올해 8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통과된 신규 법안 명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 기본법)으로 기존의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대체하는 우리나라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근거법이 된다.


통과된 탄소중립 기본법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와 함께 2030년 중간목표로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대통령 소속의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법은 탄소중립을 법제화하고 탄소중립과 관련된 정책의 이행구속력을 확보했다는데 가장 큰 의의를 둘 수 있겠으나 몇가지 아쉬운 점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입법의 추진 과정이다. 탄소중립은 경제사회 전반의 구조와 시스템의 변화없이는 달성할 수 없으며, 국민과 사회 각 부문의 협력과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사안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탄소중립 기본법은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으로 국민들의 이해와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의 제정 과정에서 국민과 산업계,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법안 심사기간 동안 있었던 공청회와 간담회는 대개 약식으로 법안소위와 동시에 개최되어 일부 전문가들만 참여했을 뿐이다.


올해 5~6월, 본 연구원의 자체 연구를 통해 산학연 전문가 25인을 대상으로 델파이 설문을 진행한 결과, 국내 기존 기후변화 법제와 관련된 가장 큰 문제점으로 ‘형식적 의견수렴’과 ‘성급하고 폐쇄적인 입법과정’이 지목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탄소중립 기본법 제정 과정에서도 드러났으며, 이에 산업계에서는 산업계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탄소중립 기본법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또한 본 입법의 당위성과 방향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미흡한 건 마찬가지이다. 탄소중립과 관련된 최초 입법 발의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며, 통과된 통합 법안에 반영된 입법안들의 발의 시점을 살펴보면 지난해 8월을 시작으로 11~12월에 3건, 올해 4월에 1건, 6~7월에 3건으로, 마지막 법안 발의 날로부터는 두 달이 지나지 않아 신규 법이 제정되었다. 본 법과 관련된 환노위 심의가 5월부터 진행된 점을 고려하면 3개월 만에 향후 30년 동안의 국가의 장기적인 계획과 방향이 담긴, 경제사회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는 법안이 국민의 충분한 이해와 사회적 합의 절차 없이 국회 안에서의 논의만으로 통과된 셈이다.


탄소중립 정책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는 기후변화 정책 수립과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숙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와 시민참여를 기반으로 추진해왔으며, 이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 강화도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본 입법이 대외적인 명분을 위한 탄소중립 법제화에 그치지 않도록 향후 추가적인 법제 개선 과정에서는 투명하고 참여적인 입법 과정과 거버넌스 개선을 통해 실질적인 부문별 탄소중립 목표 수립과 이행 과정에의 국민 참여를 보장하고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는 산업지원 정책과 관련된 부분이다. 통과된 탄소중립 기본법에는 탄소중립 과정에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감축이 필요한 산업부문의 구체적인 전략과 지원 정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본 법안의 심의 과정에서 경제성장을 주축으로 했던 기존법의 ‘녹색성장’ 개념이 유지·반영되었지만, 최근 국제적인 환경 정책과 규제 강화에 따른 산업 분야의 대응 전략 변경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대로 담겨지지 못했다.


특히 최근 EU에서 발표한 탄소국경조정 메커니즘의 도입으로 국제 무역 및 국내 산업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장은 일부 업종에만 도입할 계획으로 철강 업계에만 큰 타격이 있을 것처럼 논의되고 있지만, 향후 적용 대상 품목을 전분야로 확대하고 간접배출까지 고려할 경우 우리나라 주요 업종들이 받을 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본 연구원의 분석 결과, 탄소국경조정의 전면 도입시 국내 배출권거래제 시행에 따른 탄소가격 감면이나 기존 에너지전환 정책의 효과를 반영하지 않을 경우 2030년 우리나라 산업계가 부담해야 할 추가비용 부담 규모는 8조원 이상이 될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계가 온실가스 감축 의무와 규제만을 강요받을 경우 산업계는 물론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국내 산업계가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탄소중립에 선제적으로 동참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 요구 수준에 맞는 규제 도입과 더불어 국내 산업계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정책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이는 본 연구원에서 추진한 델파이 설문 결과 중 바람직한 기후위기 대응 입법 개선 방향성으로 선진국 수준의 규제 법제와 더불어 국내 산업계 전환 촉진을 유도하고 수출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점이 도출된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목표 설정 근거이다. 탄소중립 기본법 심의 과정에서 2030년 중간목표(NDC) 수준과 명시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만큼 감축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여기에서 2018년 대비 35% 이상이라는 목표 수치는 2018년으로부터 2050년 탄소중립까지 선형 경로를 따져봤을 때 2030년에 37.5% 감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근거로 하한선을 잡은 것으로 공개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거나 감축 경로를 따른 바가 없고, 2018년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로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향후 선형경로로 감축할 수 있다는 객관적인 근거도 없다. 탄소중립 기본법의 기본원칙 규정에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예측과 분석에 기반하고, 기후위기에 영향을 미치거나 기후위기로부터 영향을 받는 모든 영역과 분야를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적응에 관한 정책을 수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정작 본 기본법에 명시할 국가의 NDC 목표 수준을 제시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기본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탄소중립은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목표 제시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으며,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을 수 밖에 없다. 과학적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목표 설정과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행 전략이 동반되어야 한다. 10년도 남지 않은 2030년까지는 현재 가용 가능한 기술과 국내 여건을 고려한 현실적이면서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정도의 도전적인 목표와 구체적인 단계별 전략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실제 2030년 NDC는 오는 COP26을 통해 국제사회에 발표하기로 되어 있는 바, 향후 정부의 발표를 기반으로 탄소중립 기본법에 제시된 중간목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탄소중립 기본법의 시행은 오는 2022년 3월이다. 완벽한 법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법률로 규정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수 밖에 없다. 탄소중립 기본법 제정과 함께 탄소중립 사회로의 여정을 시작한 우리 사회가 이러한 시행착오와 개선 과정을 겪으며 실질적인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발전적이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前 LG 화학 기술연구원
前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카이스트 물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