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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미래연구원 연구진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상직]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생애의 형식과 삶의 의미

작성일 : 2021-08-03 작성자 : 통합 관리자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생애의 형식과 삶의 의미


이상직(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한 개인의 삶과 한 사회의 역사는 그 두 가지를 함께 이해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 사회학적 상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와 개인의 일생, 

그리고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양자 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바로 이것이 사회학적 상상력의 과제이며 약속이다.”

- C. 라이트 밀즈, 『사회학적 상상력』      


“우리가 낯설건 친하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할 때, 사회의 손끝이 우리의 접촉면에 무디게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각자의 본래 위치에 서게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어빙 고프만, 『스티그마』       



이것은 내가 ‘미래생각’에 쓰는 첫 번째 글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미래연구원 연구진의 기고문”이라는 소개 문구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한국인의 삶의 문법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보통 국가나 사회 수준에서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기술 등의 영역별로 이슈를 나열하고 전망하는 식으로 미래를 말한다. 각 이슈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는 쉽사리 보지 못한다. 영역별 문제가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쉽사리 알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사회 전망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태어나서부터 죽기까지 우리 삶을 규정하는 제도와 규범, 행위와 의식의 총체인 생애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본다면 주요 이슈는 모두 연결된다. 삶은 총체적이기 때문이다. 의미는 그러한 총체적 관점에서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오늘 태어난 아이들이 언제까지 어떻게 살아갈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10대에는 무엇을 할지, 20대에는 무엇을 할지, 30~40대에는 무엇을 할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따라, 그가 어떤 직업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러한 짐작의 준거가 되는 틀이 ‘생애 문법’이다. 이 준거는 불과 10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짧게는 5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50년 이후라면 내용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변화 또한 오늘날 문법의 맥락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생애를 규정하는 시간표가 어떤 특징을 갖는지를,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는 식으로 미래를 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기본 문제의식이다.


생애 문법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특정 시대적 맥락 내에서 나이에 따라 겪는 사건이나 경험으로, 수행하는 역할로 구성된 생애 이력에서 드러나는 공통된 패턴”으로 정의해 볼 수 있다. 역할이란 나를 둘러싼 이들이 나에게 부여하는 기대의 총체이고, 그 역할은 시대적·사회적 맥락에서 조건 지어진다. 생애 문법을 사회 변동의 맥락에서 탐구하는 ‘라이프코스 연구’는 역사와 제도의 맥락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관계 맥락에서, 개인이 나이 들면서 겪게 되는 사건이나 경험에서 발견되는 패턴을 기술하고 설명한다. 그것은 한 사람(집단)의 삶의 방식과 의미를 그가 살아온 생애라는 궤적 상에서 해석하고, 그가 맺은 관계에서 해석하고, 그가 속한 시공간에서 해석한다. 그것은 다차원(역사, 가족, 개인)의 시간과 다차원(교육, 노동, 가족)의 관계 맥락에서 생애 변동과 사회 변동의 관계를 이해한다. 요컨대 라이프코스 연구는, 나아가 사회학은, 개인의 삶에서 사회를 읽고 사회에서 개인의 삶을 읽는다.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근대인’이다. 우리는 국민/시민이자 노동자/소비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가진 국민으로 살아가게 된 지도, 임금노동자로 살아가게 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공간적 맥락을 고려하면 우리는 동아시아인이고 한국인이다. 가족의 공간과 일터의 공간과 여가의 공간이 분리된 곳에서 살아가는 시민이다. 근대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규정하는 준거로 삼는 기본 범주를 만들어냈다.


근대는 ‘정상인’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학생으로 살다가 노동자로 살다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다가 은퇴 후 여가를 즐기면서 살다가 죽는다는 삶의 시나리오가 보편 형식이 되기까지 많은 조직과 원리가 정립되었다. 가족과 학교, 군대와 직장이 대표 장치다. 여러 제도적 장치가 삶의 주요 영역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우리는 삶을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제도 내 위치에 근거해 우리의 정체성을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러한 형식을 따를 수 없거나 따르지 않는 이들이 생겨났다. 여성이, 장애가 있는 이가, 특정 지역 출신이 그러한 형식을 따를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감옥과 병원과 시설이 이들의 생애를 교정하고, 치료하고, 보살핀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졌다. 근대는 ‘비정상인’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근대에 생명은 합리화의 원리에 따라 점차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계획 가능한 것으로 조직되었다. 점차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태어나 학교와 직장에서 살다가 병원에서 죽는다.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생명의 과정이 점차 관료적 처치의 대상으로, 의료적 조작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다양한 삶의 행위가 점차 국가나 기업의 관리 대상이 되어 간다. 오늘날 한국인의 삶의 형식은 이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졌고, 또 지금도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같은 점을 찾자면 우리는 모두 같다. 다른 점을 찾자면 우리는 모두 다르다. 생애의 문법을 찾는 작업은 둘 사이 어딘가에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동시에 파악하려는 작업이다. 194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삶의 형식과 의미는 198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삶의 형식과 의미와 다를 것이다. 194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삶의 형식과 의미는 1940년대에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삶의 형식과 의미와 다를 것이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는 이들의 삶 모두 이른바 전근대인의 삶과는 다른 점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특정한 시공간적 맥락에서 형성된 생애의 형식을 규명하는 작업은 곧 사회의 질서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사회 변동의 의미를 규명하고 변화의 방향을 모색해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러한 테마로 글을 써 보려고 한다.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우리는 누구인가: 근대적 라이프코스의 구조

2. 우리는 누구인가: 근대적 라이프코스의 형성 I(젠더/장애)

3. 우리는 누구인가: 근대적 라이프코스의 형성 II(국적/지역)

4.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살게되는가: 출생과 유년

5.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살게되는가: 성장과 자립

6.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살게되는가: 재/생산

7. 우리는 어떻게 죽어가는가/죽게되는가: 노년

8. 우리는 어떻게 죽어가는가/죽게되는가: 죽음

9. 다시, 우리는 누구인가: 근대인의 삶, 한국인의 삶


먼저 근대적 라이프코스라고 부르는 오늘날 생애의 문법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러한 형식이 어떠한 과정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적 라이프코스를 떠받치는 핵심 조건은 태어나면 일반적으로 60~70대까지는 살게 되는 인구학적 안정성이다. 인생을 교육-노동-여가로 구분하는 생애사적 분화 또한 근대적 특징이다. 장애가 없는 남성 노동자 (재)생산을 주된 목표로 설정한 근대 사회가 어떤 것을 포섭하고 어떤 것을 배제했는지를 젠더와 장애, 국적과 지역이라는 관계/범주가 형성된 맥락을 검토하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이른바 생애주기별로 오늘날 한국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출생과 유년의 경험을, 성장과 자립의 경험을, 생산과 재생산의 경험을 살펴본다. 이어서 오늘날 한국인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노년과 죽음의 경험이다. 각 제목에서 능동태와 수동태를 동시에 쓴 것은 생애의 형식이 개인의 삶을 규정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과 동시에 그러한 규정 자체를 우리가 만들었다는 점을, 그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역사적 맥락과 비교사회적 맥락을 보여주는 다양한 문헌과 통계 자료를 그때마다 인용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런 작업으로 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다. 첫째, 우리 생애의 (근대적) 조건을 자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기에 삶의 개인적 맥락을 잘 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밖에 살고 있지 못하기에 삶의 사회적 맥락을 잘 모른다. 자기 삶을 시대와 사회에 자리매김해 내 삶에서 우리 삶을, 우리 삶에서 내 삶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 삶의 조건을 주어진 어떤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동시에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펴본다는 것은 내 삶의 조건을 상대화해보는 것이다. 내 삶의 의미를 사회화해보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자각을 바탕으로 조금은 다른 삶과 사회를 상상하고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삶의 조건을 상대화하고 사회화하는 작업은 우리의 삶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삶을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는 일과 연결된다. 그것은 그 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그것은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그것은 특정한 방식의 삶을 전제로 사회가 짜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그것은 다양한 삶이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글에서는 ‘근대적 라이프코스’라는 것이 형성된 역사적 맥락과 그것의 구조적 특징을 소개해 볼 것이다.




이상직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