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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박현석] 세대 갈등과 타협의 정치

작성일 : 2021-07-28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세대 갈등과 타협의 정치


장년층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보수정당 국민의 힘의 당 대표 경선에서 30대 청년 이준석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다선 의원들을 뒤로하고 대표로 선출되면서 청년 정치의 활성화와 정치권의 세대 교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준석 대표가 젊은 세대의 정서와 이해관계를 대변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정치권의 세대 교체라는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젊은이와 기성세대 사이의 가치관 충돌과 이해관계 대립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대 갈등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중요한 정책 이슈들이 세대간의 대립 양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방역대책 이후 빠른 속도로 늘어가는 재정적자, 공적 연금 기금과 건강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 적립금 고갈,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 주택시장의 양극화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세대간 균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정된 재원과 제한된 일자리를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현재의 기성 세대와 미래 세대의 대립과 반목은 구조적으로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기성 세대의 퇴장과 세대 교체를 통한 신세대의 정치가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재정적자를 통한 적극적 재정정책, 공적 연금의 확대, 연공서열식 종신고용제 등은 세대간의 연대를 통해 정착된 제도이다. 정책입안자들과 이론가들은 공공 부채를 통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다양한 논리를 개발했다. 그 중 하나는 정부 부채가 늘어나더라도 재정 지출을 통해 빠른 속도로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 궤도로 복귀하게 되면 미래 세대의 소득이 증대되는만큼 미래 세대가 부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소득이 높은 민주주의 국가의 국가 부채는 예상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서 미래 세대에게 미룰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의 경우는 장년층이 집중적으로 활용한다. 은퇴하게 되면 연금이 주요 소득원이 되며, 질병과 상해에 취약해지는 노년층은 건강보험의 주요 고객이다. 서유럽과 북유럽의 복지국가는 2차대전 이후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이전 세대보다 풍요롭게 살게 된 일하는 젊은 세대가 더욱 오래 살게 된 은퇴한 장년층의 연금 및 건강보험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해 왔다. 이들 국가에서도 고령 사회가 도래하고 성장률이 정체되면서 사회보험의 구조조정을 진행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널리 채택되어온 연공서열 종신고용제는 호봉에 따른 임금인상과 정년 고용을 보장하여 불확실성을 낮추고 소속감을 높이는 고용형태이다. 생산성이 높은 젊은 노동자들이 향후 호봉승급에 따른 고임금을 기대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장년층의 고임금이 유지될 수 있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여 사업장이 확장되던 시기 효율적으로 작동하던 연공서열 종신고용제는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규직을 보호하고 청년 고용을 낮추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세대간의 협력과 연대를 토대로 생겨난 제도들이 세대갈등의 진원지로 바뀌게 된 배경에는 경제 성장률의 지속적 하락이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보다 윤택하게 살아갈 미래 세대가 한발 물러서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평균 기대수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경제 성장의 속도가 느려지는 상황에서 기성세대는 더욱 길어질 노후 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젊은 세대는 실업, 주거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상호 배려와 양보를 통한 세대간 협력의 공간이 사라졌다.

국가 부채, 사회보험 기금 고갈, 청년 실업 상승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대간의 재분배라는 틀은 세대 내부의 구성원들 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차이를 간과하고 동일한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유사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가정하면서 세대 간의 차이점을 부각시킨다. 더 이상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장미빛 미래가 없다면 기성 세대는 자신의 문제를 세대 간의 재분배가 아닌 세대 내의 재분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의 부채를 갚기 위해서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면 미래 세대에게 미루지 말고 현재에 경제적 여력이 있는 계층이 더 무거운 조세부담을 받아들여야 한다. 건강보험 및 공적연금 기금 고갈의 문제도 세대 내부에서 재분배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미래 세대가 은퇴 고령층을 부양하기 보다는 재산을 축적한 고소득 고령층이 빈곤 고령층을 돌볼 수 있는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의 불안과 실업의 공포는 비단 청년 세대 뿐만 아니라 정규직 일자리가 없는 기성 세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보다 많은 양질의 일자리가 제공될 수 있도록 기업활동의 자유를 확대하고 고용의 경직성을 줄여나가되, 기업과 고소득자, 정규직이 사회안전망 확대에 필요한 비용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기성 세대 내부의 타협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 세대 내부의 연대와 타협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상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다. 부자와 빈자의 대립, 정규직과 비정규직 및 실업자의 갈등은 늘상 존재해 왔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에는 무거운 부담을 보다 부유하게 살아갈 미래 세대에게 넘김으로서 계급, 계층 간의 타협에 이를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미래 세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 나이로 투표권이 없다. 참정권을 가진 젊은 세대들은 그동안 낮은 투표 참여율을 보여 왔다. 젊은 세대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투표해 봐야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주저해 왔다. 그동안 정치권은 기성세대 유권자의 이해를 대변하며 미래 세대로 부담을 미뤄왔다. 이제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투표 및 정치에 참여하여 기성 정치인들이 더이상 현재의 비용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길 수 없도록 정치적 목소리를 키워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