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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좋은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작성일 : 2022-08-16 작성자 : 국회미래연구원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좋은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글.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달 18일부터 매주 회의를 열며 활동을 시작했다. 4개월간 노동시장 개혁 방향을 정리해 제도개선안을 정부에 제시할 계획이다. 12명의 교수로 구성된 연구회는 윤석열 행정부의 노동정책의 근간을 만든다고 알려져 출발부터 관심을 모았다. 과연 연구회가 좋은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나는 구성원이 풍부한 내용과 식견을 갖춘 학자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민주주의라는 운영 원리상 행정부 소속 위원회로, 그것도 연구자만으로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들의 가치나 방향성 혹은 학문적 성과와 무관하게 말이다.


첫째, 이해관계자와 이들을 대표하는 정치세력 없이 좋은 제도를 만들기란 어렵다. 민주주의는 전문가의 탁월함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불완전함을 인정해 최선을 만드는 결정이 공동체에 더 유익하다는 신뢰에 기반한다. 공익을 각기 다르게 정의하는 다원적 시민이 집단을 구성하고, 예산과 입법을 책임지는 정당이 선거로 시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정책을 주도할 권위가 주어진다. 20세기 복지국가를 이끈 것도 노동자와 사용자집단, 농민이나 중소 자영업자 등의 결사체, 이들을 중재하는 정당·정부의 대립과 화합의 과정이었다. 복지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도 좋든 나쁘든 변화를 이끈 주체도 노사, 혹은 이들과 협력하거나 갈등한 정치세력이었다. 민주주의에서 노동개혁이 가능하려면 시장에서 이를 운영할 수 있는 기업주와 실제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정당성이 실려야 설계부터 집행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변화 한복판에서 일하는 사람의 삶의 문제를 조정은커녕 청취조차 한계가 있는 연구자만으로 어떻게 이해관계를 집합해 힘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을까. 노사 간 합의가 어렵고 지난한 과정에 정책이 좌초할까 관료와 연구자만 동원하는 맥락을 모르지 않으나, 갈등적 문제일수록 위로부터 급하게 추진해 봐야 첨예한 대립만 야기할 뿐 좋은 변화는 어렵다. 민주주의는 효율성 위주의 관료기술적 결정이 아니라 느리고 시끄러운 조정 과정에 미덕이 있다.


둘째, 전문가의 역할은 시민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된 시민의 집합적 지혜를 뒷받침하는 데에 있다. 대학은 특정 분야 이론을 익히고 논증 방법을 훈련하는 곳이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도, 다양한 집단의 구체적 현실을 파악해 갈등이 불가피한 이들 간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경험을 키워 주지는 못한다. 샤트슈나이더(Schattschneider)가 현대 민주주의의 교과서라 불리는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전문가란 어느 한 분야에 관해서는 전부를 알고자 하면서도 그 밖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쓴 문구는 지금도 종종 인용된다. 먼저 민주주의를 경험한 나라일수록 학자의 역할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해서일 것이다. 전문가를 배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구자는 분야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유능하다. 거대한 조직에서 관료를 이끌고 다른 부처 및 정당과 국회 등 다른 기관들과 협력하는 것은 권력의 한복판에서 이를 잘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정치적 훈련이 필요하지 학술적 성취와는 별도 영역이다. 대학에서 바로 장관이나 총리로 자리를 옮긴 이들이 각종 설화를 겪다 낙마하는 현실은 우연이 아니라 예견된 오류다.


가끔 독일의 하르츠 노동개혁을 주도한 위원회가 전문가만으로 꾸려졌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노동조합이 기업운영은 물론 국가 통치 전반에 관여할 뿐 아니라 정당 간 합의제 전통이 강한 나라와 노동 배제적이고 관료통제적 관성이 강한 한국에서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앙상한 형식만 따라해 봐야 나라마다 사회상태가 다르기에 상이한 맥락으로 작동하기 쉽다.


셋째, 그간 한국 정치가 연구자의 자율성과 학문적 성취를 존중해 그들의 지혜를 빌린 게 아니었다. 정당 스스로 지자들의 이해를 대표해 정책을 생산할 조직과 능력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선거 때마다 연구자를 대거 불러 연속성도 정합성도 없는 백화점식 공약집을 단시간에 만드는 데 활용했다. 권력을 얻은 정치세력은 지지자 중 주로 힘 있는 이의 요구만 뒷받침할 이들에게 자리를 배분하는 것으로 공약 이행의 책임을 미뤘다. 정작 그들이 맡은 소임을 다할 수 있는지는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불평등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간 정책실패를 정치세력의 의지나 진정성 부족, 정교한 프로그램 부재로 단순화하지 않으려면 민주주의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와 논의가 풍부해져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과 아이디어가 넘쳐도 정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제도는 책자에 불과하지 정책이 될 수 없다.


또한 한국처럼 연구자가 행정과 정치영역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권력을 누리는 나라가 드문데 왜 학문 세계는 점점 황폐해지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연구자를 온갖 자문기구와 위원회 등 회의체에 부르고 용역연구를 발주하는 행위가 공익은 물론 자유로운 학문발달과 질적 향상에 과연 기여하고 있는지 성찰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노동시장 양극화라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연구회다. 세간의 우려는 기우였다는 듯 대다수 일하는 시민의 미래를 위해 유익한 역할을 해 주길 희망한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