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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심상정] 기후정의와 불평등 해소 위한 주4일제 사회혁신

작성일 : 2022-05-31 작성자 : 통합 관리자



기후정의와 불평등 해소 위한 주4일제 사회혁신


우리는 2022년에 살고 있다. 1989년에 만들어진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묘사했던 2015년의 미래에서도 벌써 7년이 지난 시점이다. 영화 속 상상력은 반 정도는 맞고, 반 정도는 틀렸다. 지금으로부터 30년 뒤, 2052년에 우리들의 삶은 어떨까. 아마도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의 반은 맞고, 반은 틀릴 것이다. 그러나 결코 틀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2050 탄소중립’이다.


지난해 8월에 유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지구 온도 1.5도 상승의 시점을 10년 앞당긴 2040년으로 예측했다. 그야말로 ‘기후비상사태 선언’이었으나 우리 정치권의 반응은 미미했다. 눈앞의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기후위기는 당면 과제로 좀처럼 인식되지 못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미래가 아닌 현실이다. 이 현실을 타개하지 않고서는 다음 세대는 물론이고, 기성세대도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또 하나의 과제는 바로 ‘불평등’이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실업’의 문제는 이미 세계적 고민거리다. 실업의 근본 원인은 생산성 과잉에 있다. 1926년 포드사가 주5일제를 시행한 이후 100년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노동생산성은 수십 배 높아졌는데, 인류의 노동시간은 그대로다. 이제 더 적은 인력에 의해 충분한 재화들이 생산되기 때문에 더 많이 고용할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되면 실업은 더 폭증하고, 그로 인해 소득 불평등과 세대 간 불평등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디스토피아를 막는 가장 명쾌한 해법은 노동시간을 과감히 단축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양질의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다.


바로 ‘주4일제 사회’로의 담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청년과 시민들에 의해 대선 중심 의제로 떠올랐던 ‘주4일제’는 그저 노동시간 단축 공약이 아니었다. ‘고에너지 대량생산 경쟁사회’였던 지난 100년과 완전히 결별하고, ‘저에너지 적정생산 공존사회’의 새로운 100년을 열어내겠다는 각오를 담은 제안이었다. 이는 가장 담대한 기후위기 해법이자 불평등 해소 방안 중의 하나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국내의 대표적 IT기업인 네이버가 올해 7월부터 주3일제와 전면 재택근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최근 주4일제 법안을 발의했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다. 주4일제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곧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주4일제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핵심 이유는 주4일제가 매우 강력한 양질의 일자리 정책이자, 에너지 저감 정책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경제전망 연구소는 노동시간을 하루 줄이는 것만으로 그 즉시 프랑스에 200만 개 일자리 창출이 일어나리라고 예측한 바 있다.


주4일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직원 4명이 하루 8시간 주 5일 동안 총 160시간을 일하는 기업이 있다고 가정하자. 주4일제를 실시하면 1명당 8시간씩 빠져서 기존보다 총 32시간의 공백이 생긴다. 이는 직원 1명분의 주4일제 노동시간이다. 즉, 새로운 정규직 일자리 하나가 창출되는 것이다. 기존 4인의 주4일제 전환을 포함하면 양질의 일자리 5개가 생겨나는 효과가 발생한다.


여기에 정부는 기존의 막대한 취업급여 예산 등을 활용하여 주4일제 직원 1명 추가 고용에 대한 급여를 일정 기간 지원한다. 그러면 기업은 추가 부담이 없으므로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가 충분히 가능해진다. 이미 프랑스, 독일 등에서 이러한 형태의 제도를 시행 중이다. 또, 주4일제 노동사회는 달리 표현하면 ‘주3일제 소비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시민들의 소비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기업의 이윤이 증가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정부의 급여지원 없이도 주4일제를 감당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이 이뤄질 것이다.


주4일제에 의한 에너지 저감 효과는 이미 유럽 선진국의 많은 연구자료가 나와 있다. 영국 레딩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주4일제로 전환할 경우, 영국의 자동차 운행거리가 매주 9억km 감소하리라고 예측했다. 영국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은 주4일제 전환 시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1억 2700만 톤을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자동차 2700만 대가 도로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다. 또한 스웨덴 정치연구소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주4일제로 노동시간을 20% 감축하면, 온실가스는 16% 감축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명시적 효과뿐만 아니라, 주4일제를 통한 ‘적정한 노동’의 확대는 우리 사회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변화시키며, ‘적정한 에너지’, ‘적정한 소비’, ‘적정한 성장’에 대한 담론의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일찍이 제기했던 ‘성과사회’ 이후의 유토피아적 ‘피로사회’는 어쩌면 바로 ‘주4일제 사회’의 모습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 이러한 주4일제 사회 실험을 지역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청년을 지역으로 불러들이고, 지역소멸의 위기를 극복하는 히든카드 또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4일제는 ‘심상정의 대선공약’에서 멈추지 않고, ‘기후정의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혁신 방안’으로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공유하며, 더 적은 시간 일하고, 쉼표가 있는 삶을 누리며, 지구의 한계 속에서 더 적은 에너지로, 적정한 소비를 하는 사회로 전환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사회적 실험은 세계 곳곳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경제선진국으로서, 이 전환의 시대를 주도적으로 선도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정치의 담대한 일보 전진이 필요하다.



심상정

- (현) 국회의원 (17, 19, 20, 21대 4선) 

- (전) 정의당 당대표

-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 (전) 전국금속노동조합 사무처장

- 구로공단 미싱사 취업이후 노동운동 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