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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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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문정호] 전환시대의 공공계획

작성일 : 2021-07-28 작성자 : 통합 관리자


전환시대의 공공계획


바야흐로 전환(transition)의 시대다. 우리 사는 세상의 근현대사에서 변화의 속도는 항상 빨랐었지만, 이제는 그 방향성까지 종횡무진, 현기증을 일으킨다. 좋든 싫든, 능동적으로든 수동적으로든, 자연스럽든 억지스럽든 변화의 속도에 맞추고 전환의 방향에 따라야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녹색전환(green transition)과 디지털전환(digital transition)에 관한 논의를 강조하려고 한다. 이들은 이미 새로운 이슈가 아니라서 다소 식상할 수는 있지만 매우 뚜렷하고 파괴력 있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첫째 이유다. 더욱 중요한 둘째 이유는 이 전환들이 필자가 강변하려고 하는 공공계획의 전환 논리에 대해 핵심 논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녹색전환과 공정전환(just transition)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 집단, 개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에 관한 문제인식 수준은 아직도 천차만별인 듯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기후변화를 보다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대응에 찬성‧동참하는 경향이 확산‧고조되고 있다. 압축성장 시대로부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환경‧고탄소 경제성장의 혜택을 오롯이 받고 살아온 필자에게, 지극히 사적인 견해이지만, 기후변화는 우리 세대보다 2세, 3세 세대에게 더욱 큰 위협과 부담으로 보인다. 미래 세대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라도 보다 빠르고 철저하게 생산, 소비, 삶의 양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필자가 이해하는 녹색전환의 의미다.


그린뉴딜, 탄소중립 등 녹색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방향성과 수단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실천과 집행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글에서 이와 관련된 사항들을 일일이 짚을 수는 없고, 기왕 전환이라는 열쇳말을 꺼냈으니 “공정전환”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혹은 “정의로운(just)”이라고도 표현되는데, 요체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도중에 “좌초”할 수밖에 없는 혹은 그러할 가능성이 높은 취약 계층‧지역‧산업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본격화된 추진전략 논의에서 공정전환의 핵심 원리는 그 구현 과정에서 차별받고 피해보는 부문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전환과 데이터전환(data transition)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디지털전환의 양상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얼마 전 스포츠 관련기사를 인공지능이 쓰게 한다는 외신을 봤는데, 국책연구기관의 간단한 정책개발연구도 조만간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가슴이 덜컥 또는 뜨끔했다. 디지털트윈(digital twin), 머신런닝(machine learning), 자율주행 등 디지털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이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고 나아가 선도하는 일은 개인‧기업‧지역‧국가의 역량과 경쟁력의 필수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녹색전환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환에 따라가지 못하는 좌초산업, 좌초고용 등 공정전환의 이슈가 나타날 수 있다.


광범위한 디지털전환의 양상 중 데이터전환에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잠복해 있다. 데이터 전환의 대표주자는 역시 빅데이터(big data)라고 할 것이다. 휴대전화, 신용카드 등 우리의 생활 자체가 시나브로 빅데이터로 기록, 수집, 활용되는 일이 이제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빅데이터의 영역은 기업들의 고객 데이터 수집 활동 및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폭발적 증가와 스마트폰 보급, SNS 활성화 및 사물 통신망의 저변 확대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민간‧기업 부문 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 입안과 계획 수립에 있어서도 빅데이터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여러 문제점과 우려스러운 점이 제기되고 있다. 개인정보 노출과 인권 (프라이버시, 익명성의 권리), 데이터 독점 (기업 또는 조직의 배타적 독점성향), 데이터 공유 (빅데이터의 공공재적 성격), 데이터 신뢰성 (조작 우려), 전수조사와의 차이 (표본 편향성) 등 아직 사회적, 제도적, 기술적으로 소화하지 못한 사안이 즐비하다.


공공계획의 전환 논리


누구나 미래에 대한 얼개를 짠다. 즉 어떻게 될지를 전망하고, 어떻게 되어야지를 설정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필자의 수준에서는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부문, 시민사회가 어울려 미래사회의 얼개를 짜는 일이 “공공계획”이라고 이해한다. 짐작하시다시피 우리나라의 공공계획에 있어 가장 지배적인 행위자는 국가(중앙정부)라 할 수 있고 특히 20세기 후반 압축성장 시대에 더욱 그랬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IMF 사태를 지나며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공고화되고, 참여정부 시대를 지나 오늘날에 이르는 동안 지자체와 민간부문, 시민사회의 역할과 영향력이 급속히 커졌다. 한 마디로 정부 중심의 실용주의적 공공계획은 국민의 간섭과 견제를 받는 참여와 정치의 영역으로 위치 이동한 것이고, 요즘은 단호한 결정력이나 지배적인 추진력을 상당부분 상실한 채로 복잡다기한 여론, 정쟁, 사회갈등 속에서 방향성을 잃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전환(transition)의 시대다. 앞서 언급한 녹색‧공정‧디지털‧데이터 전환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다. 이 지점에서 공공계획은 보다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확인하고, 그 가치를 구현하는 기본적인 원칙을 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녹색전환에서의 사회적 가치는 미래세대‧지구촌의 지속가능성이고, 원칙 중에는 공정전환, 취약집단 보호가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전환의 가치는 경쟁력, 성장 동력, 국민 복리 증진에 있을 것이고, 원칙에는 효율‧효과적이면서 신속하게 추진하되 사회적‧도덕적 수용성을 최대화한다는 점이 강조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환을 위한 공공계획의 목표, 전략, 수단은 그러한 가치와 원칙에 조응하는 내용을 담아야 함은 물론이다.


전환시대의 공공계획은 우리의 현실보다 체계화되고, 이성적이며, 통제가 가능한, 합리적인 일련의 사회적 과정을 요구한다. 여기서의 핵심요소는 과학과 정치다. 어느 때인가부터 공공계획 과정에서 과학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공공계획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관료와 전문가 집단의 배타성 문제와 과학‧기술적 이슈에 대한 정치의 침투 문제가 복합되어 있는 듯하다. 공공계획에서의 과학은 객관성, 투명성 그리고 정확성의 문제다. 편향되지 않은 증거에 기초한 조사‧분석‧평가의 과학적 접근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정치과정에서는 협상과 합의형성이 문제가 된다. 여기서는 공공 참여자 모두가 도출된 결과에 대해 승복하길 요구하는데 우리에게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걱정스러운 면이 많다. 결국 이 시대 공공계획의 전환 논리는 과학의 정치적 전환이자, 정치의 과학적 전환이 아닐까 싶다. 녹색전환이든 디지털전환이든 사회와 시대의 성공적인 전환을 위한 공공계획의 전환 논리를 보다 치열하게 강구해야 할 때다.





1) 여기서 “좌초”산업의 개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 전략의 일환으로 발전부문의 탈석탄화를 추진한다면 석탄 채굴 산업, 운송, 가공, 발전소까지 기존의 참여주체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제조업 자동화, 정보화 같은 기술발전이 여러 직업을 없애고 고용을 감소시키는 현상과 다름없다.

2) 패러다임 변화를 뜻하는 “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표현에 비해 “transition”은 플랫폼 변화 정도로 한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전환”의 의미 전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영어 표현의 차이를 구분하지는 않으려 한다. 어차피 필자는 디지털 전환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니다.

3) 데이터전환의 또 다른 측면은 “데이터 경제”다. 2020년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디지털뉴딜의 핵심과제에 포함된 데이터댐, 국민안전SOC 디지털화, 디지털트윈 등은 데이터 경제로의 전환을 견인하는 사항들이다. 이처럼 아날로그의 세상을 디지털 데이터로 바꾸는 데이터전환은 디지털 전환의 토대가 되는 중차대한 일이다.

4) 필자는 공공(공공) 영역에서의 계획을 바람직한 사회적 목표의 달성을 활동 또는 수단으로 보는 입장이고, 따라서 공공계획은 정부의 정책 활동 및 행정계획의 범주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정책은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미래의 행동지침을 제시하는 정부의 의사결정인데, 정책과 계획과의 관계는 목표 위계, 대상, 내용의 구체성에 따라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어 하나가 다른 하나의 상위개념이라기보다는 복합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다. (문정호 외, 2006, 참여시대 공공계획의 패러다임에 관한 연구, 국토연구원. 참조)




문정호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국토연구원 부원장

미국 남가주대 (Univ. of So. Calif.) 계획학 박사
국토연구원 글로벌개발협력센터 소장 역임
대통령 소속 지역발전위원회 정책연구팀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