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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대한민국의 앞날을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미래연구원 연구진의 기고문

제목
[박상훈] 존 로크의 시민 정부
작성자
통합 관리자
작성일
2020-06-18
게시글 내용



존 로크의 시민 정부







글.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parksh0305@nafi.re.kr)



1.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호출되는 정치 고전의 목록에서 존 로크의 『시민 정부론』을 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의 중심 원리라고 부르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법질서나 제도, 절차, 규범 대부분은 이 책에서 처음 주창되고 정당화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훼손되거나 위협받을 때, 혹은 그것들이 변화를 요구받거나 의심받을 때마다 로크의 이 책은 언급되고 인용되고 재조명되곤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때마다 로크와 『시민 정부론』의 이미지가 매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어떤 때는 혁명가나 급진주의자로서의 이미지를 갖는다. 다른 또 어떤 때는 사회적 합의와 입법부를 존중하는 의회 민주주의자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는 개인 권리나 재산권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옹호론자의 이미지가 부각될 때도 있다. 왜 그럴까?



2. 첫째는 존 로크의 『시민 정부론』이 ‘근대 인권론’의 기초를 확고히 다진 책이었다는 사실에서 발원한다. 그 핵심은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에 있다. 로크에 따르면, “인간은 완전한 자유와 자연법상의 모든 권리 및 특권을 간섭받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다른 어떤 사람 또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평등하게 가지고 태어났다.”(7장) 따라서 제아무리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형성된 공적 권력이라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개개인이 가진 기본권의 문 앞에서 멈춰야 한다.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전제정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이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없었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옹호는 1789년 일어난 프랑스대혁명보다 정확히 1백 년 전인 1689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에도 권위주의나 전체주의처럼 동의받지 않은 통치로 인해 고통을 받을 때마다 지식인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내걸고 체제와 맞설 수 있었다. 로크에 따르면 “본래 인간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된 존재이므로 어떤 인간도 자신의 동의 없이 이러한 상태를 떠나서 다른 사람의 정치 권력에 복종할 수 없(는)”(8장) 존재이다.


둘째, 정부의 모든 행위는 입법을 통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회 민주주의 내지 입헌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책이기 때문이다. 로크에 따르면 “정부하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자유란 일정한 법률, 다시 말해 그 사회에서 설립된 입법권이 제정하고 그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률을 가지는 것이다.”(4장) 자연적 자유와는 달리 시민으로서의 자유는 입법을 통해 구현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법에 의한 제재 이외에 다른 사적 처벌이나 강제의 대상이 되지 않을 자유를 갖게 되었는데, 이는 곧 정부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즉 정부는 시민 권리의 보호를 자신의 소명이자 책임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언을 구하는 모든 인류에게 자연의 법인 이성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독립된 존재이므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자유 또는 소유물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2장)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 기본권에 의해 그 역할이 축소되는 ‘제한 정부론’은 이렇게 구축되었다.


정부가 그 역할에 실패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 시민은 ‘폭력으로라도’ 정부를 전복할 수 있는 저항권을 갖게 된다. 이 역시 존 로크의 『시민 정부론』이 담고 있는 내용인데, ‘시민은 자유롭고 정부는 책임을 진다.’라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초 규범은 이런 원리 위에서 세워지게 되었다. 2016년 말에서 2017년 전반기 사이에 있었던 대규모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은 그런 의미에서 존 로크의 ‘책임 정부론’을 구현한 한국적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목적을 상실했다고 여겨졌을 때, 시민은 항의했고 입법부는 탄핵을 가결했으며 사법부는 그것의 합법성을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로크의 『시민 정부론』이 사적 소유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정당화하는 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한 책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재산권의 침해를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견딜 수 없어 하는데, 사실 이런 생각을 로크 이전 그 어떤 사상가나 철학자도 내세운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순조로운 조합을 가능케 한 사상적 대전환은 다른 어떤 고전보다도 존 로크의 『시민 정부론』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영혼의 깊은 열망과 고결함, 명예, 위대함, 희생과 같은 고전적 정치론의 덕목 대신 상행위의 긍정적 효과를 향유하는 개개인의 소소한 욕망을 로크보다 긍정적으로 옹호한 사상가도 없었다. 모든 정치학자들이 동의하듯, 로크야말로 현대 중산층의 ‘소유 중심적 개인주의’를 정당화하는 정치론을 최초로 확립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로크의 『시민 정부론』에서 가장 유명한 다음의 문장은 이를 잘 보여준다.

“대지와 모든 열등한 피조물은 만인의 공유물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신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그 사람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신체 노동과 손의 작업은 당연히 그의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이 제공하고 그 안에 놓아 둔 공유물을 그가 꺼내어 거기에 자신의 노동을 섞고 무언가 그 자신의 것을 보태면, 그것은 그의 소유가 된다. 그로 인해 자연이 놓아둔 공유의 상태에서 벗어나 그의 노동이 부가된 무언가가 되었기에, 그 부가된 것으로 인해 타인의 가졌던 공통된 권리는 배제된다. 왜냐면 그와 같은 노동은 노동을 한 자의 소유물임이 분명하므로 타인이 아닌 오직 그만이 노동이 첨가된 것에 대해 권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5장)

근면하고 성실한 노동을 통해 재산을 얻고 그 재산을 키워가는 것이 정치 밖 사회 속에서 시민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면, 정부나 국가의 역할은 이를 보호하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 “사람들이 자연상태를 벗어나 사회에 들어가는 커다란 목적은 그들의 재산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향유하는 것”(11장)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사회 자체의 동의나 사회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자의 동의가 없이는 사회에 대해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11장) 그 가운데 재산권의 보호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로크는 마치 정부가 전쟁 시에 군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려 그들의 목숨을 걸게 할 수는 있어서 그들이 받을 급여에 손댈 권한은 없다는 듯이, 말한다. 또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위정자는 종종 공공선이 법의 집행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에 범죄의 처벌은 그 자신의 권한으로 면제할 수 있지만, 사적인 피해자가 받게 된 받게 된 손해로 인해 그에게 지불해야 할 보상은 면제할 수 없다”(2장)


이처럼 정부나 정치보다는 사회 중심적이고 그 가운데 재산 소유자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그의 사상은 ‘제한정부’(limited-government)를 넘어 시장경제에 대한 개입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최소정부’(minimal-government)의 이론적 토대로 작용하게 되었다. 코로나 19 이후 ‘긴급한 행정조치’와 ‘영업활동의 자유’라는 대립적인 가치 사이에서 논쟁과 소송이 발생한다면 그때에도 어김없이 로크의 자유주의는 그의 책 『시민 정부론』과 함께 다시 불러 들여질 것이다.



3.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사상을 가르치는 스티븐 스미스 교수에 따르면, 옥스퍼드대학에 다니는 동안 로크의 별명은 “과묵함의 대가”였다고 한다. 당시 그는 국교에 반대하는 급진주의자로 의심을 받았는데, 정치 논쟁과 종교 갈등이 뒤엉킨 당시로서는 자신의 종교관이나 정치관을 드러낸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그는 왕정에 반대하는 급진파 정치세력의 리더였던 새프츠배리 백작의 측근이 되었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던 존 로크가 백작의 심장 질환을 수술로 치료해 준 것이 인연이 되었지만, 로크가 쓴 여러 책이 백작의 정치관을 사상적으로 옹호하는 목적을 가졌다는 점에서 그는 기꺼이 정치적 인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익명으로 출판된 책의 실제 저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죽기 직전에 밝혔다는 점에서, 여전히 조심스럽고 신중한 삶의 자세를 유지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로크의 주요 저작은, 국왕에 반대해 새프츠배리 백작이 주도했던 정치적 시도가 실패한 뒤 그와 함께 망명을 떠난 네덜란드에서 집필되었다. 그 가운데 『시민 정부론』은 일반 시민의 언어로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팸플릿에 가까웠다. 그만큼 실제 정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생각으로 작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고, 또 그만큼 저자 이름을 익명으로 해야 했는지 모른다. 물론 당시에도 존 로크가 실제 저자일 것이라는 의심을 받았지만 그의 성격답게 사실을 인정하는 데까지는 그의 전 생애가 걸렸다.


그간 국내에서 이 책의 번역은 주로 『통치론』이라는 제목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잘 붙인 제목은 아니라고 본다. 존 로크가 다루고자 한 주제는, 특정의 인격성을 가진 통치자나 그의 적극적 통치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날 우리가 기본권이라고 부르는 ‘시민적 자유’의 기초 위에 세워진 정부, 즉 ‘합법화된 공적 권력’의 역할과 한계를 논구하는 데 있었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원제는 “An Essay Concerning The True Original, Extent, and End of Civil Government”인데, 의미 그대로 옮긴다면 “시민 정부의 참된 기원, 범위, 및 그 목적에 관한 하나의 시론” 정도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17세기 내내 지속되었던 반란과 혁명의 영국사 속에서 집필되었고 명예혁명 직후인 1689년에 출간되었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세습 군주의 전제적 통치에 반대해 시민들이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계약할 수 있는 ‘가상적 인격체’로서 정부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통치론’의 전형을 보여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는 달리, 이 책은 통치 기관 내지 제도로서 ‘정부론’을 다룬 사실상 최초의 근대적 정치 고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4. 존 로크의 『시민 정부론』이 담고 있는 정치사상의 정수가 가장 잘 표현한 사례를 꼽으라면 누구라도 1776년에 시작된 미국의 독립전쟁을 들 것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을 쓴 것으로 잘 알려진 독립선언문 가운데 다음 내용만큼 로크의 『시민 정부론』을 잘 요약해 주는 것도 없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자명한 진리로 간주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러한 권리 가운데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가 있다. 이러한 권리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정부는 피통치자의 동의로부터 자신들의 정당한 권력을 도출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해친다면, 다음과 같은 일은 민중의 권리가 된다. 그때 민중은 정부를 교체하거나 폐지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본래의 원리에 기초를 두면서도 피통치자의 동의에 맞는 방식으로 정당한 권력을 조직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혁명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존재 목적을 스스로 해친 정부를 폐지하고 교체해 “피통치자(시민)의 동의에 맞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회계약을 형성해 신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니 왜 안 그러하겠는가. 하지만 로크가 정당화한 혁명론은 묘한 구석이 있다. 일반적으로 혁명론은 체제 전복적이거나 이를 통해 기존 사회를 변혁하는 것을 지향한다. 하지만 로크가 주장하는 혁명은 체제 전복적인 사회혁명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그는 정치 혁명을 말하며, 그가 말하는 정치 혁명의 목적은 “본래의 원리”를 복원하는 데 있다. 로크에게서 정부는 시민의 자유와 생명, 재산을 지키는 소명을 갖는다. 따라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정부에 저항해 되찾아야 할 것은 본래 시민 개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제된 권리들이다. 반대로 새롭게 교체된 정부의 역할은 개인의 소유물(자유, 생명, 재산)을 확고하게 지키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로크의 ‘정치 혁명 이후 정치’는 적극적이기보다는 소극적이어야 하고 ‘혁명 이후의 정부’ 또한 자신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을 안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해 로크의 혁명론은 정치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시민에 속한 것을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사회 복원의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아마 홉스였다면, 로크의 기획에 대해 혹평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모든 시민이 적나라하게 자신들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자연 상태’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나 정부의 적극적 역할 없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자연적 질서란 혼란과 갈등 이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홉스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관점이다. 정치나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없을 때 인간 사회가 만나게 될 미래는 홉스 쪽에 가까울까 아니면 로크 쪽에 가까울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항구적 갈등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본 홉스와는 달리, 로크는 신의 특별한 피조물로서 인간만이 가진 합리적 이성을 신뢰하며, 그런 이성이 작동하는 자연적인 질서의 가능성을 낙관하는 쪽이다. 자유로운 상업 활동이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킬 것이라 보았고, 이를 주도하는 중산층들의 근면함과 도덕적 청렴함에 큰 기대를 걸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자율적 시장경제와 공익적 시민사회가 정치나 정부의 역할을 꽤나 많이 대신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역할은 자유로운 시민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개개인 사이의 불안정한 권리 관계를 제도화하고 이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제한해도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홉스에 대해서는 “(자연 상태에서) 족제비나 여우로부터 받을지 모르는 해악을 피하고자 조심하면서도, (정부라는)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데는 만족하거나, 심지어 안전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은 생각”이라 평가했다. 이처럼 큰 정부나 강한 국가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함께,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시민사회에 대한 큰 기대를 특징으로 하는 근대 부르주아의 이상을 로크보다 앞서 분명하게 표명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진보적 정치사상가들에게 로크는 늘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5. 존 로크의 『시민 정부론』에서 이상화된 인권론과 정부론, 나아가 상업 사회에 대한 기대는 거의 온전히 미국을 통해 실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영미식 자유주의’, ‘영미식 민주주의’, ‘영미식 자본주의’라고 불리듯, 17세기 말의 영국과 18세기 말의 미국이 하나의 유형으로 수렴발전하는 데 있어서 로크의 사상이 미친 영향은 컸다.


루이스 하츠(Louis Hartz)라고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로서 독립혁명 이후 미국의 정치사를 지배한 사상과 이념을 연구한 대학자다. 유럽과는 달리 미국에서 사회주의를 포함해 다른 사상이나 이념이 발붙이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는 “미국은 비이성적일 정도로 로크주의”에 의해 지배된 역사였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총기 규제가 어려울 정도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무한한 신뢰,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강한 확신, 정부 개입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 등은 ‘로크보다 더 로크적인 미국 사회’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에는 로크식의 ‘소유 중심적 개인주의’와는 다른 계보도 있다. 대표적으로 존 롤스다. 롤스 역시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의 이론 틀을 통해 개인 권리와 사회 정의 사이의 관계를 논구했다. 하지만 결론은 매우 다르다. 로크가 인간의 자유와 생명, 재산에 대한 권리를 '침해할 수 없는' 개개인의 배타적 소유물로 보았다면, 롤스에게서 그런 전제는 반드시 확정적이지 않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개인도 억압 없이 자유롭게 살아야 하고, 모두의 생명과 삶의 기회가 평등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판단 역시 얼마든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일 수 있다. 누군가가 축적한 거대한 재산이 그 자신의 노동에만 의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가능케 한 법률은 물론, 노동시장 관련 수많은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고 정부에 의해 건설된 사회적 인프라가 아니었다면, 많은 재산을 쉽게 축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다. 따라서 재산권에 대한 공적 통제나 사회 정의를 위한 재분배 정책은 개개인의 관점에서도 얼마든지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에 따라 정부나 정치의 적극적 역할이 자유주의의 관점에서도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도 있다.


로크식 자유주의가 미국 정치사상의 독점적 전통이 아니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미국 헌법에 영향을 미친 정치사상에는 공화주의의 영향도 매우 컸다는 존 포칵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시다 스카치폴이 강조하듯 미국이 유럽보다 먼저 복지국가의 실험을 했다는 사실이나, 1930년대 뉴딜을 포함해 적극적인 사회정책을 통해 노동 통합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 역시 미국의 전통에서 배제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42대 대통령을 지낸 빌 클린턴이나 44대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재직 시절 존 롤스의 자유주의와 사회정의론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코로나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는 어디로 갈까? 시민들은 어떤 정부를 바라게 될까? 더 로크적이 될까 아니면 로크로부터 멀어져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까?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지난 시대를 풍미했던 자유주의는 향후 어떤 도전에 직면하게 될까? 요컨대 존 로크의 『시민 정부론』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장점과 동시에 한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정치의 고전이자,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가 향후 어떤 미래를 갖게 될 것인지를 조망해보게 하는 여전히 유익한 비교 시각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