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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밀려오는 '언택트', 밀려나는 노동
작성일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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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밀려오는 '언택트', 밀려나는 노동








코로나19가 부른 비대면(언택트· untact) 파도에 노동자가 밀려난다. 사람이 있던 자리에 기계가 들어서고 있다. 감염 우려가 적은 이른바 ‘방역 맞춤형’ 기술체제로의 전환이다. 기계는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단순노동 종사자의 일자리부터 흔든다.


4차 산업혁명의 기치 아래 디지털 기술 전환에 ‘전진 기어’를 넣었던 기업은 코로나19를 계기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한국사회는 비대면은 ‘효율’로, 대면을 ‘비효율’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같은 비대면 선호 기조는 코로나19 이후 사회 전반에 더욱 단단히 뿌리내렸다.


무인화·자동화는 구조적 피해가 나타난 오프라인 유통을 시작으로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 산업구조의 무게 중심은 IT와 비대면 온라인 유통, 무인화 관련 산업으로 이동 중이다. 정부도 ‘한국형 뉴딜’을 통한 대규모 디지털 경제 육성을 추진한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사라진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도태된 노동자들이 디지털 경제 체제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남아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진다. 바이러스 시대, 노동은 어디로 가야 할까.


■빨라진 폐점 시계, 밀려나는 노동자


롯데마트 일부 점포가 문을 닫는다. 오는 6월 충남 천안아산점과 경기 양주점을 시작으로 올해에만 15개 매장이 폐점한다. 쇼핑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오프라인 유통은 매출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롯데마트는 248억원의 영업손실을 내고 적자 전환했다. 롯데쇼핑은 향후 5년간 백화점을 포함한 롯데쇼핑 718개 매장 가운데 점포 200곳 이상(약 30%)을 정리할 예정이다.


코로나19는 롯데쇼핑의 대대적인 유통구조 전환을 부채질했다. 비대면·온라인 유통으로의 전환은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롯데 측은 ‘폐점 소속 직원은 인근 40㎞ 이내 점포로 분산·배치해 전체 고용을 유지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폐점 대상인 양주점의 경우 계산원을 포함한 판매직 노동자 대다수가 회사를 떠날 예정이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본사 직원과는 임금 수준과 체계가 상이한 이른바 ‘특수’ 정규직이다. 이현숙 마트노조 롯데마트지부 사무국장은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 고령 여성노동자들에게 원거리 출퇴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현장에서는 사실상 해고 통보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롯데마트는 55세 이상 70세 미만인 ‘실버사원’ 38명에 대해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계약을 종료했다. 당초 롯데마트는 실버사원 모집 당시 ‘70세에 계약이 종료된다’고 공언했지만 경영악화를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실버사원과 같은 비정규직을 비롯한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롯데의 고용 대책 리스트에 빠져 있다.


오프라인에서 강도 높은 인력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롯데는 7개 계열사의 온라인몰을 통합한 새로운 온라인 유통 플랫폼 ‘롯데온’을 출범시켰다. 2023년까지 온라인 매출 20조원 달성이 목표다. 롯데쇼핑 측은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맞춤형 쇼핑 환경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쇼핑을 이용했던 소비자 3900만 명의 빅데이터는 롯데온의 핵심이 되는 ‘기술 자본’이다. 누적된 고객 데이터가 개인화 맞춤형 쇼핑 서비스를 가능케 한다.


이에 반해 인적·물적 자본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덜하다. 물류센터 등 오프라인 물류망에 대한 투자 규모도 적다. 롯데마트 등 기존 오프라인 매장들을 배송기지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신규 물류센터가 신설된다고 해도 사람이 아닌 자동화 설비가 주축이 된다. 배송 서비스는 기존 오프라인 매장의 노동자를 활용한다. 인력이 없으면 타 점포에서 파견하는 방식으로 충당한다. 신규 사업 출범과 함께 대규모 인력 채용이 이뤄졌던 이전과는 다른 모양새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인 셈이다.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서 코로나19는 인력 구조조정의 좋은 명분이 된다”며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면 더 적은 인원으로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신규 인력 채용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폐점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한 ‘남은 노동자’들은 어떨까. 경기도의 한 대형마트에서 20년째 계산 업무를 하고 있는 김명숙씨(52·가명)는 전에 없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두 차례 손목관절 수술을 받으면서도 그럭저럭 버텨왔던 일터였다. 하지만 최근 2년 사이 상황이 달라졌다. 고객들이 퍼붓는 폭언과 욕설 횟수와 수위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씨는 올해에만 두 차례 ‘갑질 고객’을 만나 곤욕을 치렀다. 1월에 만난 고객은 김씨의 결제가 매끄럽지 못하다며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었고 3월에 만난 고객은 훔친 물건이 적발되자 되레 김씨에게 모욕을 줬다. 계산대로 이목이 집중됐다. 김씨는 눈물을 쏟았다.


기가 막혔던 것은 사측의 대처였다. 분란이 생길 때마다 회사는 김씨가 고객에게 사과할 것을 종용했다. 김씨는 고개를 숙였다. 이후 김씨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계산대에 앉아만 있어도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뛰었다. 회사에 감정노동자를 위한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비용이 드는데다 사측이 ‘김씨 케이스’를 공식 기록으로 남기길 꺼려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안정제를 복용하며 일하고 있다. 김씨는 “지금 일자리를 잃으면 우리는 갈 곳이 없다”며 “그 사실을 회사도 우리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못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과 같은 계산원들이 겪는 강도 높은 감정 노동의 원인을 무인계산대에서 찾는다. 도입 당시 12대였던 무인계산대는 2년 만에 30대로 늘어났다. 전체 계산대의 60%가 무인계산대다. 셀프계산이 어려운 고객들은 긴 대기줄을 감내하며 계산원이 있는 계산대를 찾는다. 이 때문에 몇 안 되는 ‘사람 계산대’는 늘 붐빈다. 계산원 인력 충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남은 계산원들은 쉴 틈 없이 일한다. 그럼에도 기다림에 지친 고객들은 쉽게 짜증을 낸다. 일부는 폭언·욕설로 이어진다. 지난해 9월에는 고객의 폭언을 들은 홈플러스 계산원 이모씨(58)가 귀가 후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숨지는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특고’를 활용한 디지털 전환


학습지 교사는 국내 불안정 노동시장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전통적인 특수고용노동자다. 고용안전망에서 벗어난 이들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회원 이탈이 이어졌다. 생활 속 거리 두기에서 방문수업은 퇴출 1순위가 됐다. 가계 수입 감소에 따라 사교육비을 줄이려는 회원들도 학습지를 끊었다. 방문 회원과 과목 수에 따라 수입이 생기는 학습지 교사에게는 치명적이다. 정부는 특수고용자에게 월 50만원의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한다는 생계지원 대책을 내놨지만 지급 요건이 까다로워 체감 효과는 미미하다.


그렇다고 학습지 회사에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회사는 이들이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별도의 지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부모들이 환불 요청을 하면 교사가 사비로 환불해주고 있는 형국이다. 학습지 교사들은 무너지기 직전이지만 회사는 코로나19 이후 ‘원격교육’을 내세워 새로운 수익 창출을 꾀하고 있다. 학습지 회사의 출구전략은 비대면 화상수업을 통한 디지털 전환이다. 교원구몬은 4월부터 비대면 화상 수업 확대에 나섰는데 지난 1월 7000명에 불과했던 비대면 학습자가 5만6000명(3월 기준)으로 늘었다.


이 같은 비대면 수업 확대는 여러모로 교사들에게 달갑지 않은 변화다. 비대면 수업은 태블릿PC를 통해 화상으로 이뤄지는데 교사들은 회사 방침에 따라 회원들에게 전용 태블릿PC를 판매하고 실적을 쌓아야 한다. 고가의 태블릿 판매를 겸하면서 실적 압박은 커졌는데 수입은 예전만 못하다. 수수료 체계가 교사에게 불리하게 책정됐기 때문이다. 과거 대면 수업의 경우, 과목 수에 따라 수수료가 책정됐지만 비대면 수업은 과목 수가 아닌 태블릿 판매 수에 따라 매겨진다. 정양출 전국학습지산업노조 구몬지부 지부장은 “비대면 수업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교사가 받는 수입은 적어지고 회사의 수익은 커지는 구조”라며 “교사를 이용해 비대면 화상수업 확대하고 나면 정작 교사들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대법원은 “재능교육 등 학습지 교사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지난 4월 2일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장낙원)는 ‘대교 학습지 교사는 노조법상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학습지 회사들은 여전히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년 넘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학습지 교사들은 회사의 디지털 전환 작업이 끝나는 대로 일자리에서 밀려날 판이다.


■질 낮은 일자리 양산하는 물류업계


그렇다면 코로나19로 호황을 맞이한 배달·단거리 물류 산업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까. 현재 배달·물류 업계가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비정규 계약직·일용직 등 질 낮은 일자리다. 그나마도 자율주행차·로봇·드론 배송이 안착하기 전까지만 양산되는 시한부 일자리에 가깝다.


2018년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미국의 로봇 기업인 베어로보틱스에 200만 달러(약 25억원)를 투자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자율주행 음식배달 로봇을 공개했고 올해 들어서는 LG전자·현대엘리베이터와 연달아 로봇 공동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기술이 발달하면 플랫폼 노동자들은 다른 배송 수단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며 “비대면 산업 활성화와 일자리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코로나 국면에서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플랫폼 노동과 같은 질 낮은 일자리가 고용 사각지대가 아니라 고용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며 고용안전망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디지털 경제와 언택트 경제로의 전환이 급속도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의 예측도 다르지 않다. 4월 29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이하 중대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디지털 경제 및 비대면 경제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디지털 중심으로 규제체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중대본은 ‘한국형 뉴딜’의 방향과 10대 산업 분야 규제 혁신방안을 함께 발표했다. 규제를 걷어내 원격 의료와 원격 교육, 온라인 비즈니스 등 비대면 산업을 키운다는 게 골자다.


중대본의 대책은 의료데이터 등 데이터 활용을 디지털 경제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디지털 경제의 이면은 보이지 않는다. 구조적 실업과 기업 간 양극화, 계층 간 불평등 심화 문제는 빠져 있다.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역설적이지만 비대면 경제로의 전환은 사람에 초점을 맞춰 진행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이전보다 거대한 불평등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원문 :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020913001&code=94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