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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on of researchers at NAFI

Title
[박상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Writer
통합 관리자
Date
2019-08-01
게시글 내용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글. 박상훈 초빙연구위원(parksh0305@nafi.re.kr)


1. 최초의 정치학자

   

플라톤이 『국가』를 통해 정치를 철학자에게 넘기라고 요구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란 철학이 될 수 없다.”며 자신의 책 『정치학』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 뒤 플라톤은 ‘철학을 만든 사람’으로 남았다. 영국의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말했듯, “가장 안전하게 일반화한다면, 유럽에서 철학이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을 만든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최초의 정치학자” 혹은 “정치학자들의 스승”이란 별칭이 주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새롭게 세운 정치학의 길에는 학자들만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철학자나 동료 지식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민과 정치가를 상대로 정치학을 말하고 가르쳤다. 그의 언어는 전적으로 일상어였으며, 우리가 현실 정치에서 보듯 의회나 여론 시장에서 벌어지는 정치 논쟁에 적합한 말의 형태를 가졌다. 플라톤이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던 수사학의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사람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간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이 사실은 중요하다. 

흔히 『정치학』이라고 번역되는 아리스토텔레스 책의 원제는 폴리티카(Politika, 영어로는 politics)인데, 이 단어는 ‘정치’와 ‘정치학’이라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로서의 정치’와 ‘학문으로서의 정치학’을 분리시키지 않았다. 정치 밖에서가 아니라 정치 안에서 연구했고 또 실제의 정치에 조언하고 영향을 미치고 싶어 했다. 개미집을 관찰하는 곤충학자가 아니라 개미집마다 들어가 만져보고 비교하는 한 마리의 개미처럼 연구하려 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현실 정치는 잘 모른다거나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고결한 학자의 자세인 양 여기거나, 학문적 전문어만 사용할 줄 아는 요즘 정치학자들과는 크게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동을 위한 정치학, 즉 현실 정치를 움직이는 정치가와 시민을 위한 정치론을 만든 사람이다. 따라서 그의 책을 『정치학』이 아니라 『정치』라고 번역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2. 무엇을 말하려 했나

   

‘법의 지배’가 곧 정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의는 합법성 내지 법의 틀을 벗어나서는 성립될 수가 없다, 오늘날 이 주장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2천 5백 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에 따르면 법은 “욕구를 갖지 않는 이성”이다. 임의적 통치를 방지하는 목적을 갖는 게 법이다. 법의 지배란 ‘공평성’의 원리로 작동하며 그에 반해 자의적 통치는 ‘분노’에 기초를 둔다. 분노는 가장 훌륭한 통치자마저 잘못된 길로 빠뜨린다.

물론 그가 법의 지배에 대해서만 말한 것은 아니다. 최고의 체제는 글로 쓰인 법에 기반한 체제가 아니라 정치의 역할이 중시되는 체제다. 법은 일반적인 문제만 다룰 뿐 특정 상황에는 적용할 수 없는 어설픈 도구이기 때문이다. 법을 쉽게 바꾸는 관행은 잘못이다. 법을 자주 바꾸면 불복종이 습관화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작인 『정치학』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정치학』을 직접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견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영문도 모르고 태어났지만, 언어(logos)를 가진 점에서 다른 피조물과 달랐다. 그 때문에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이성은 물론 선과 악을 나눠볼 수 있는 덕성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말이 나쁘고, 그래서 이성이라는 무기를 잘못 사용하거나 덕성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 인간은 “가장 불경하고 가장 야만적인 존재”가 된다. 이 역시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한 말이다.

당시에 국가는 폴리스(polis) 즉, 도시국가 내지는 독립된 정치공동체를 의미했다. 그런 국가는 ‘큰 가정’이 아니고, 가정 역시 ‘작은 국가’가 아니다. 가정을 벗어나서도 얼마든지 ‘목적 있는 삶’을 살 수가 있으나 국가를 벗어나서는 그럴 수 없다. 국가는 시민의 최종 목적(telos)이고, 그 이상으로 복종해야 할 세계정부나 세계국가가 없기에 그 안에서 충족한 삶을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단위이다. 따라서 국가 없이 누군가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인간 이하이거나 인간 이상일 것”이라는 것도 같은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정치학자라면 이런 생각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테제로 정리해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쯤은 이미 상식화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2012년 프랑스의 수능 논술시험(바칼로레아) 문제로 “정치에 무관심하고도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가 나왔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읽지 않은 학생들도 얼마든지 좋은 답을 할 수 있었다.

정치란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갈등을 능숙하게 관리하는 기예이다. 혁명과 내전으로 이어지기 전에 갈등을 조정하고 완화하는 일이 정치다. 인간의 의식을 바꾸고 개조하는 것은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좋은 인간과 좋은 시민은 이상적인 사회에서라면 일치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어렵다. 정치학은 좋은 시민을 만드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은 개개인의 과업이 될 수는 있겠지만, 좋은 시민성이 자리잡게 하는 일은 어느 사회든 중요한 공동의 과업이다. 좋은 인간은 어떤 정치 체제에서나 좋은 인간이겠지만 좋은 시민은 정치 체제에 따라 다르다. 민주정에서의 좋은 시민의 덕목이 군주정이나 귀족정에서 유효할 수 없고, 미국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시민의 덕목과 독일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시민의 덕목도 같을 수 없다. 따라서 정치 체제론의 다른 짝은 시민론이 아닐 수 없다.

그 핵심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통치하고 잘 통치받는 일을 번갈아 하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을 그는 ‘시민적 우애’(philia)라 표현했다. 나아가 그것이야말로 국가를 위한 최고선이라 여겼다. 시민들 사이에 공통의 애착, 우정의 연대가 있을 때 각자가 가진 장점의 총합보다 더 큰 체제의 능력이 실현된다고 보았다. 역으로 공동의 노력을 가능케 할 시민들 사이의 신뢰가 깨진 곳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국가도, 정치도, 나아가 시민 자체도 없다. 그래서 일부 정치가와 일부 시민 집단이 보여주는 오만이야말로 그런 정치적 우애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혹자는 정치에 관심 없다고 말할 수도 있고, 현실의 정치란 음모와 질투, 싸움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어서 가까이 가기 싫다고 여길지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이렇게 대꾸했을 것이다. “당신은 정치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나 정치는 당신에게 관심이 많다.”고 말이다. 좋은 정치를 만들지 못하면 좋은 시민의 삶은 불가능하다. 정치의 좋은 기능 없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온전한 삶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다뤄진 주제들이지만, 그 책을 읽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는 그런 판단인 것은 아니다. 

흔히 고전(Classic)이란 “아무도 읽지 않지만, 누구나 아는척할 수 있는 책”이라 불리곤 한다. 고전은 전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열어젖힌 책이다. 당시로써는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책’이다.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책’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물론, 기존의 체제나 제도에 있어서도 변화를 이끌게 된다.

그 뒤 고전이 담고 있던 새로운 생각과 변화는 더 이상 일탈이나 변이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표준으로 자리잡는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내적 긴장과 갈등 없이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투사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고전 혹은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란 지나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일상 속에서 경험되고 있고 사유와 행동의 패턴을 이끄는 원리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꼭 읽지 않더라도 약간의 배경 지식만 있으면 얼마든지 읽은 것처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고전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아직은 덜 상식화 되어 있는 견해나 생각을 고전을 읽으며 새롭게 주목할 수 있다. 설령 알고 있다고 여겼던 주제도 고전과 직접 대면하면서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측면이 더 중요한지 모른다. 우리가 이끌어야 할 미래란, 미지의 무엇에 대한 기다림이 아니라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사안과 도전을 더 깊고 더 넓게 이해하는 능력과 힘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들은 새로운 연구 주제를 맡게 되면 맨 먼저 고전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궁금해한다. 그래서 해당 주제와 관련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해 놓은 것을 살핀다. 마키아벨리라면 어떻게 접근했을지를 찾아보려 한다. 막스 베버의 연구 가운데 유사 주제를 다룬 대목을 뒤지곤 한다. 요컨대 오늘날에도 고전은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주장을 발전시키고자 하거나,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재의 도전과 진지하게 마주하거나,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미래 의제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할 때마다 유익한 대화 상대가 되어 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정치학』이야말로 그런 책이다.

     

3. 순수한 이론 기획 vs 현실주의적 합성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스승인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항변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를 앞서에서 했지만, 혹자는 스승에 대해 제자가 그럴 수 있겠냐며 의아하게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둘은 나이로는 40년 이상 차이가 나는,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다. 플라톤은 아테네를 대표하는 명문 귀족 가문 출신으로,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역할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에서 유학 온 이방인이었다. 17세 때부터 60대 초반까지 거의 대부분의 삶을 아테네에서 보냈지만, 시민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주변인이었다. 그래서 플라톤보다 더 잘 현실의 정치를 객관화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스승인 플라톤의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를 이해하는 문제에 있어서 두 사람은 명백히 서로 다른 길을 개척했고, 그래서 더 두 사람의 차이와 다름이 가치가 있다.

플라톤은 ‘지식이 지배하는 왕국’을 꿈꿨다. 존재하는 현세와 그 속에서의 경험을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본 그는, 보통 사람들이 가진 편협한 억지 의견(doxa, dogma)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렇듯 누구나 주장하는 불완전한 의견 위에서는 좋은 정치 체제가 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참된 지식과 확고한 정의관을 가진 지식인(철학자)이 기획자이자 운영자로 나서서 좀 더 완전하고 이상적인 체제를 만들기를 바랐다.

‘철인왕’(philosopher king)이라고 불리는, 이상적 통치자가 중심이 되는 이 기획은 일종의 ‘총체적 재편 계획’을 특징으로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해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국가 대개조’에 나서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야만 집단적 갈등과 분열적 정념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고 본 것도 플라톤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플라톤은 ‘유기체 국가론자’일 수는 있어도, 결코 다원주의자나 점진적 개혁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달랐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고 보았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갖는 통상적 견해(endoxa)에도 존중할 만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비판했던 다수(민주정)의 의견이 더 지혜로울 때도 있고, 무엇보다도 다수는 소수(귀족정)에 비해 쉽게 부패하지 않는 장점도 있다고 여겼다.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수가 가진 탁월함도 인정했다. 통치의 기예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분포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정치란 근본적으로 귀족적인 일이라는 사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한다면 소수 엘리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좋은 점이 전혀 없는 체제는 없다. 하나의 정치적 만능 모델도 없다. 나아가 훌륭한 체제는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늘 장점의 혼합과 다원적인 것들 사이의 균형을 중시했다. 한 금속의 재질보다 합금이 더 강하고 튼튼한 경우가 많듯, 정치 체제도 순수형보다는 혼합형이 더 우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는 회의적인 정조가 없다. 플라톤이 현존하는 정치 체제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정조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구성하는 수많은 부분들 사이에서 점진적 변화와 개선의 가능성을 찾는 것에 열의를 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접근이 총체적이고 전면적이지는 않을지 모르나, 개탄과 냉소로 일관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이고 실천적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4. 총체적 변화 vs 부분적 변화

   

플라톤이 현존하는 모든 불완전함을 넘어설 수 있는 변혁적 기획을 이론적으로 완성하려 했던 철학자였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존하는 여러 부분들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완화하는 현실적 최선을 추구하려 했던 정치학자라는 이야기는 앞서 충분히 했다. 그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총체적이기보다는 다원적이고, 철학적이기보다는 실천적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플라톤이 전체 체제를 하나의 일원적 총체로 만들어야 생각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전체란 서로 다른 ‘부분 체제들(partial regimes)’의 결합 이상은 아니었다. 총체적 재편이 아니라 부분적 변화들의 연쇄효과만으로 충분하고, 그것이 또 현실적이라고 보았다. 이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방법론의 차이가 존재한다.

플라톤이 ‘현상을 넘어 존재하는 이데아’ 즉, 현존하는 불완전한 민주정을 넘어 이상적 국가를 지향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반응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이데아의 세계는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할 것 같지도 않다.”고 응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으로 완전한 새 질서보다,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질서를 강조하고 그에 만족하고자 했다. 응당 그의 관점은 사물을 상대화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론은 ‘비교’에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교의 전문가다. 누군가 그에게 “키가 크시네요.”라고 말했다면 그는 필시 “누구보다? 성인의 평균 키보다? 아니면 상위 10%에 들어갈 만큼?” 하고 반문할 사람이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제자들과 함께 158개나 되는 나라의 정치 체제가 갖는 특징을 자세히 조사하고 비교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그가 전개한 정치 체제의 풍부한 유형론이나 매우 현실적인 실천론은 모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비교를 통해서 얻은 성취라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정치학』이야말로 비교 연구의 놀라운 매력을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의사도 아프면 다른 의사를 찾듯, 정치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도 다른 정치 체제를 통해 더 잘 조명될 수 있다. 흉악한 강도도 자신이 다른 강도의 피해자가 되길 바라지 않듯, 스스로의 문제점을 돌아볼 수 없는 정치 체제는 없다. 신발을 신기만 하는 소비자도 좋은 신발을 구별해 낼 수 있듯, 완전한 하나의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듯 정치 체제에서도 언제나 옳은 하나의 정의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최선의 완벽한 인물이 지배하는 체제에 대한 허망한 기대를 버린다면, 아마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부족하고 불완전한 것들 사이에서 ‘비교적’ 큰 문제 없고 ‘비교적’ 실패할 가능성이 덜한 체제를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확히 그런 성격의 정치학을 지향했다. 불완전한 부분들이 상호 의존적이면서도 동태적인 균형을 찾아가도록 하는 정치적 기예랄까, 가능성의 예술을 그는 기대했다.

지식인들 가운데 현실 정치와 관련해 의견을 말할 때면, 싹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거나 발본적 변화 없이 희망이 없다는 논변을 습관처럼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가들에게 기대할 것이 있냐는 투의 냉소적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은 완전한 정치를 꿈꾸고 있군요. 그런 날이 올 거 같습니까? 그런 정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변화를 찾으려는 노력을 중단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총체적 재편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속한 부분 체제들 속에서 바꾸고 개선할 일은 많습니다. 부분들 사이의 불균형한 변화가 누적되어야 언젠가 전체의 변화도 가능할 거라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게 인간의 정치에 합당한 이해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5. 현실적인 것이 불온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혁명과 내전을 혐오하는 정치학”이라는, 일종의 보수적 해석 쪽으로 치우쳐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에게 총체적 변화나 완전한 사회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없다. 동시에 정치 체제가 내전 상태로 퇴락해 시민들 사이에서 참혹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다른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공동체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무능력한 통치자, 시민을 분열시키는 무책임한 정치가를 혐오했고, 오만한 독재자를 경멸했다. 그보다는 현 상태라도 잘 유지하는 온건한 평화론자를 더 선호했다. 확실히 그는 점진적이고 현실적인 개혁론을 대표하는 정치학을 펼쳤다. 

하지만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로부터 배척받았다. “어떤 목적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것이 자연이다.”는 그의 견해로는 기독교적 기적을 정당화할 수 없었다. 완전한 국가에 대한 열망에 벅차 있어야 할 신도들에게 그의 『정치학』은 “그건 헛된 꿈”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13세기 토머스 아퀴나스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복권되기 전까지 기독교 안에서 그는 불경스러운 존재였다. 

정치학의 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가진 위험함을 고발한 최초의 사람은 17세기의 토머스 홉스였다. 홉스가 보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왕의 시해를 정당화하는 공화 정부의 위험한 교의”였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고, 무엇이 정당한 질서인지에 대한 질문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이 좋은 정치이고 무엇이 좋은 시민의 덕목인지를 끊임없이 따지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따라서 공화정부나 민주정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불온한 정치관을 확산시키는 주범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곤 한다. 

혁명적 이상주의가 현실에서는 별 위협으로 여겨지지 않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정치학은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기에, 때로 위험시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