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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Idea

Contribution of researchers at NAFI

Title
[민보경] 우리와 그들은 같이 살 수 있을까
Writer
통합 관리자
Date
2019-07-03
게시글 내용

우리와 그들은 같이 살 수 있을까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bmin@nafi.re.kr)


우리가 사람을 사귀게 되면 으레 ‘어디에 사는지’를 물어보게 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사는 곳을 알면 대략 상대방의 사회계층을 짐작하곤 한다. 서울 강남에 사는지,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심지어 같은 아파트라도 어느 동에 사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면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한 경우 대부분 물어본 사람이나 대답을 하는 사람 모두 심각하지 않다. 그저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물어보는 단골 질문거리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사는 곳이 우리 동네라면, 근처의 임대주택에 산다면 이전 분위기와는 달리 서로 멋쩍어질지 모른다.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해진 현실에서 주거지의 위치는 물론, 형태와 크기는 빈부서열을 나누는 척도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서 공공임대주택에 산다고 낯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선뜻 내키지 않는다. 임대주택은 저소득층 거주지라는 부정적 인식이 있기에 임대주택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차별을 받지 않을까 싶은 석연치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주거이동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살고 싶은 욕망은 당연한 심리이다. 고급주택지들이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를 지향하며 깐깐한 검문검색으로 그들만의 공간을 외부와 철저히 분리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외부의 위험요소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그들의 시스템은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한 인간의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반면, 빗장지르기(gating)는 공간을 분리하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이는 많은 도시 연구자들이 미국, 서유럽 등 선진국 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 중남미 등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게이티드 커뮤니티 확산에 대해 사회 구성원간 소통 약화, 배타성 증가, 위화감 조성 등 사회갈등 관련 문제들을 제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거분리로 인한 사회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중에 ‘소셜믹스(social mix)’의 개념이 있다. 소셜믹스는 원래 사회경제적 혼합(socioeconomic mix)의 준말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양한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고안된 사회통합정책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80년대 후반 공공임대주택의 대규모 공급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당시 대규모 임대주택 단지가 지역적으로 침체되고 다른 계층이나 인근 지역과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또한 임대주택 입주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임대주택 건설 반대나 갈등현상이 부각되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소득수준이 상승하면서 전에 없던 사회계층간의 주거지로 인한 갈등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소셜믹스는 2005년도에 임대주택 개편방안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하였고,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의 혼합, 입주자격 개편, 소형 평형 의무화 등 다양한 요소로 우리나라 주거정책에 스며들어 현실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최근 들어 소셜믹스가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주민갈등 때문이다. 같은 단지 내에서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의 건물동을 분리하고 담을 교묘하게 쌓는다든지, 같은 건물 내에서 층수를 구분하여 아예 출입구를 분리한다든지 하는 방법 등은 뉴스를 통해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임대 아파트도 민간임대냐 공공임대냐에 따라 우위가 결정되고, 민간 분양 아파트도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아파트 차별 현상은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갈등 상황은 학문적으로도 관심을 받아온 주제이다. 사회과학에서 보가더스 척도(Borgadus Scale)로 대표되는 사회적 거리감의 측정방법이 있다. 이는 원래 소수 민족이나 외국인에 대해 느끼는 사회적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개발된 척도인데, 그들을 결혼, 친구, 이웃, 직장동료 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묻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거리감이란 ‘우리(we)’와 ‘그들(them)’ 사이를 구분하는 일종의 경계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영화 ‘기생충’은 사회적 거리감을 ‘냄새’를 통해 표현하고, 이는 사회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적 요소이다. 영화에서 반지하 주택과 대저택, 낙후한 동네와 부자 동네는 계층을 상징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그들 간의 사회경제적 계층의 차이는 냄새로 차별화된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기준에 의한 이분법적 선긋기가 우리의 아파트 단지에 적용된다면,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를 집단적으로 구별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선긋기를 없애고, 계층혼화를 위해 물리적으로 섞어놓는다고 해서 사회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 분양동과 임대동 사이 담장설치로 인한 갈등만 봐도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물리적 혼합 위주의 기존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 아파트 입주민 간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화학적 혼합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서로의 냄새를 더 이상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다.


임대주택의 갈등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와 그들은 원래 하나의 우리라는 관용적 사회 분위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전반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앞으로 인구는 감소하고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될 것이다. 빈부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은 저성장시대에는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가난한 독거노인, 돈 못 버는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는 계속 늘어날 태세다. 각자도생하는 척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행복은 그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할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웃도 행복해야 한다. 나 혼자만 행복한 사회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