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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on of researchers at NAFI

Title
[박성준] 한일 무역갈등과 무역의 무기화
Writer
통합 관리자
Date
2019-08-22
게시글 내용



한일 무역갈등과 무역의 무기화




글. 박성준 부연구위원(sjpark@nafi.re.kr)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제한 및 백색 국가 제외와 같은 최근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결정에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이고, 일본 정부는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경제적인 보복을 시행하였고 볼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이러한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내 들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산업이 일본에 상당히 의존적인 반면 일본의 산업은 한국에 대해 그다지 의존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사항은 사실 그동안 한국 내에서 꾸준히 지적되던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그동안의 논의는 직접적인 경제 보복 가능성보다는 부가가치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져 왔다는 차이가 있다. 과거사와 관련된 한국과 일본의 오랜 갈등이 경제 분야로 옮겨감에 따라 한국 산업의 일본에 대한 의존성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중일 희토류 분쟁 당시 일본의 대응에서 그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2010년에 중국은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하였는데, 이는 센카쿠열도 분쟁이라는 정치적인 이슈가 무역 보복으로 이어졌다는 점과 상대국이 자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간재를 도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일본의 이번 경제 보복 조치와 매우 유사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요구에 굴복했지만(중국인 선장 석방), 장기적으로는 외교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에 대응하였다. 외교적으로는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였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희토류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한편 소재 개발 등을 통해 희토류를 기술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희토류에 대한 의존도를 어느 정도 낮출 수 있었고, 세계무역기구에서 승소하였다. 또한 국제여론이 악화되자 중국은 결국 2015년에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철회하였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대응은 세계무역기구에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를 제소하는 것이다. 일본의 조치에 정당성이 없고, 센카쿠열도 분쟁 당시에 일본이 폈던 논리를 역이용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논쟁에서 충분히 우위를 점하고 승소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외교적 노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한다면 일본에 대한 압박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외교적인 대응방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경제 보복 조치가 가능했던 이유는 양국 간 산업 의존도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외교적으로 조속히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향후 양국 간 정치적 갈등이 다시 심화된다면 일본 정부는 언제든지 비슷한 카드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은 과거 센카쿠열도 분쟁 당시 일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 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이미 정부와 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바와 같이 기존에 일본에 의존하던 주요 소재 및 부품의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국산화를 통해 대체하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해법은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및 국제 분업으로 대변되는 냉전 이후 무역의 흐름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최근의 활발한 국제 분업은 전통적인 국제무역 이론의 비교우위 개념과 맞닿아 있다. 각 국가가 (상대적인 개념에서)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재화가 다르므로 각 국가가 자급자족하기보다는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생산에 집중하고 무역을 통해 서로 재화를 교환하는 편이 모든 국가에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이러한 원리에 따라 국제 분업 체제에 참여하였으며, 일본에 의한 산업 의존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일정 부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던 중간재를 다른 국가로부터 수입하거나 국산화를 한다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산업 의존도를 성공적으로 낮춘다면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주요 불안요소 하나를 걷어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희토류 분쟁,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등은 모두 경제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무역을 무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경제적인 요소를 상대 진영을 견제하기 위해 사용하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무역을 무기화하는 최근의 사태가 완전히 새로운 무엇은 아니다. 다만,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이 더디어지자 각국이 자국의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함에 따라 이러한 모습이 과거와는 조금 다르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얼마 전까지의 세계화 및 자유무역주의 흐름과 대비되는 것으로, 앞으로 비슷한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