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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황석원] 국제 제도 플랫폼의 미래
소속
통합 관리자
Date
2021-02-23
게시글 내용

국제 제도 플랫폼의 미래

황석원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현 STEPI 선임연구위원) 2021. 02. 23.


국제 제도 플랫폼의 미래


2021년 1월 8일 트위터는 트럼프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트럼프는 대변인보다 훨씬 더 자주 애용하던 플랫폼에서 쫓겨난 것인데, 박탈감이 클 것이다. 플랫폼에서 축출된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 된다. 열심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시간을 쓰고 있었는데, 플랫폼이 해당 사용자의 포스트에 대해 아예 검색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상업 광고와 연동하여 개인이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 여러 가지 이유로 수익 창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상당한 수익을 기대하며 개인 사업 수준으로 콘텐츠를 제작해 올리던 사람들에게는 큰 타격이 될 것이다. 통째로 플랫폼에서 축출되는 것과는 다르지만, 플랫폼을 사용하면서 기대하는 근본 이익을 없앤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축출 또는 배제라 할 수 있다.  


플랫폼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조치를 취하지는 않는다. 사용자 귀책 사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심각한 이슈는 여전히 남는다. 플랫폼의 결정은 대개 재량에 의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외부에서 알기 어려우며, 심지어 당하는 본인이 그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불투명하고 교묘하게 이뤄지기도 한다.  


비즈니스 플랫폼에서의 축출 논의를 조금 더 확장해, 국제 제도 플랫폼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2021년 1월 뉴욕증권거래소는 중국 통신 3사 주식을 상장 폐지했다. 이는 관세 부과를 매개로 한 무역 전쟁보다 훨씬 무거운 함의를 갖는다. 미국이 국제 제도 플랫폼에서 중국을 축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이전부터 대응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포괄적 투자협정(CAI, EU-China Comprehensive Agreement on Investment)을,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The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을 체결함으로써 중국이 관여하는 국제 제도 플랫폼을 강화했다. 국제 거래에서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위안화를 절상하는 한편, 미국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각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달러 체제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위안화 절상과 결을 같이하는 긴축 조치로서, 팬데믹 대불황에서 경제 회복이 가장 빨랐음에도 기업 부채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향후 국제 무역 질서에서 점차 배제될 가능성, 특히 대미 수출 위축 가능성에 대비하여 내수 증대(쌍 순환) 정책을 천명했다. 중국 자체의 경제 순환을 강화하기 위해 철강, 원유 등 원자재와 에너지를 계속 비축하고 있다. 백신 접종에 따른 경제 회복 기대와 함께 중국의 원자재 수입 확대도 최근 원자재 가격 앙등의 한 원인일 것이다. 중국은 미ㆍ중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 열전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항시적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긴장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국제 제도 플랫폼이라는 관점에서 미래 중국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여기서 잠깐 '국제 제도 플랫폼'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보통 '국제 질서'라고 말하곤 하는데, 아무래도 요즘 같은 격동의 시대에는 뉘앙스가 약하다. 필자는 작금의 국제 질서를 패권국 주도로 형성된 전 지구적 제도 플랫폼이라 해석한다. 진영 사이의 대립이나 국제 질서에서의 축출과 배제(sanction 등)를 보다 강조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국제 제도 플랫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자.  


예전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고 있을 때, 대립하는 국제 제도 플랫폼이 존재하여 양쪽 진영의 안보, 외교, 무역 질서를 구성했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 국제 질서가 형성되었다. 자유무역, 국제분업체계(GVC, Global Value Chain), 중국의 글로벌 생산기지화, 미국의 쌍둥이 적자, 중국을 비롯한 제조업 수출국들의 달러 표시 자산 증대(외환보유고), GVC에 편입된 신흥 개발국의 발전과 소득 증가, 선진국 제조업 쇠퇴와 저임 노동자들의 실직, GVC 편입 후발국과 그렇지 못한 저개발국 사이의 양극화, 선진국 내부 자산 보유자와 저임 노동자 또는 실직자 사이의 빈부 양극화가 숨 가쁘게 이어졌다. 승자의 행복과 패자의 불행이 교차했다. 미개발국과 신흥 발전국 정치권 일부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한편, 선진국에서는 러스트 벨트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는 미국 중심의 동맹 질서를 흔들었고, 브렉시트로 이어졌다. GVC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이 패권 경쟁국으로 발전했고, 한국도 갓 선진국이 되었다. 제조업의 중심 국가가 된 중국은 막대한 자금 동원력과 당정군산(黨政軍産) 복합체를 앞세워 모바일 통신, 무인 비행체, 우주 개발, 인공지능, 전기차, 이차전지, 자율주행차, 로봇 분야에서 미국을 위협할 만한 기술 수준에 도달했다. 


'패권의 비밀'(김태유 , 김대륜 저)에 '재정군사 국가' 개념이 소개되어 있는데, 자원만 뒷받침된다면 광대한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전쟁을 오랫동안 수행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단기전이면 몰라도 장기전, 상륙전, 소모전이 되면 중국이 미국에 밀릴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을 가질 법하다. 핵전쟁은 논외로 하고, 재래식 열전도 어느 한쪽이 승패를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면, 열전이 아닌 냉전, 즉 국제 제도 플랫폼 경쟁이 핵심 이슈로 부각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이제 중국은 미국 중심의 국제 제도 플랫폼 이외의 대안적 국제 제도 플랫폼을 모색하려고 하지 않을까?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불안하고 궁금한 것은 많으나 무엇 하나 예단하기 어렵다. 정파와 진영을 불문하고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확실한 것은, 중국이 모색하는 중국 중심의 국제 제도 플랫폼이 어떤 모습이든, 관건은 과학기술과 무역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무역에 대해서는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아프리카 외교, CAI, RCEP 등 여러 모색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중국에게 더 큰 문제는 과학기술이다. 중국은 자체 공급망 완성의 마지막 단추인 반도체 굴기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소재, 장비, 설계, 공정 각 분야의 원천기술과 양산(스케일업) 체제, 반도체 하드웨어에서 구동하는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어떤 시스템/콘텐츠/비즈니스 플랫폼이든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데이터의 축적과 활용, 근미래 가장 중요한 기술인 인공지능이 모두 엮여 있다. 그동안 중국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플랫폼 구축에 공을 들여왔다. 비즈니스 플랫폼 측면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차단되고 대신 바이두, 위챗, 알리바바가 성장했다. 리눅스 기반의 오픈 소스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도 적극 사용하고 있고 독자적인 인공지능 기술도 크게 발전했다.  


대단한 성공임에는 틀림없지만, 중국으로서는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일 수도 있다. 플랫폼 사이의 교차 또는 위계 구조 관점에서 보면, 국제 제도 플랫폼 내부의, 경제/과학기술 플랫폼 내부의, 제도적 및 사실적 표준(de facto standard) 플랫폼 내부의, 시스템 플랫폼 내부의, 운영체제 플랫폼 내부의 또는 운영체제를 교차하는, 비즈니스 플랫폼까지 각각의 모든 위계에서 대안적 플랫폼을 모색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이 이를 저지하고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할 것인가 전망에 따라 우리의 대응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대응과 관련해 패권 경쟁국이 아닌 다른 선진국, 신흥국의 동향 파악과 협력 체제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필자와 같은 외교·안보 문외한에게도 명백해 보인다. 움직여도 같이 움직여야 맞을 매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RCEP에 가입했으면 다른 국가들과 보조 맞춤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CPTPP(The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에 가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EU, ASEAN, 일본, 인도 등과 긴밀히 협력하고 대응해 나감으로써 난세를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황석원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연구재단 기술사업화 전문위원
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시스템연구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