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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정창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토
소속
통합 관리자
Date
2021-01-14
게시글 내용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토

정창무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현 서울공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2021. 01. 14.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토


과거 보통 사람들의 희망은 살 집과 갈아먹을 땅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제공하는 것이 국토였다는 사실은 이 시대도 다르지 않다. 갈아먹을 땅 대신에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문전옥답과 같은 비옥한 토지와 힘만 들고 소출이 작았던 황무지가 있었듯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비옥한 국토가 있고, 척박한 국토가 있을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이 쉬운 비옥한 국토를 만들려는 방편을 두고 우리 사회는 오랜 기간 갑론을박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주장은 국토균형발전론과 거점개발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론이다.  


국토균형발전론자들은 수도권 인구집중으로 인한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수도권의 인구와 기능의 지방분산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노력으로 2002년 행정 중심복합도시 조성이 결정되었으며, 현 세종시로 중앙행정부처와 국가출연 연구기관들의 대규모 이전이 이루어졌다. 최근 들어 국토균형발전론자의 이러한 논리가 다시 득세하고 있다. 서울만이 아니라 수도권 전체의 교통이 과거보다 더 막히고 있으며, 집값은 전례 없이 앙등하고 있는 현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은 세종시로 정부행정기능을 일부 이전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에 미처 이전 못 한 정부 부처와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들, 국회와 법원, 청와대도 세종시로 모두 이전시켜 행정수도를 완성한다면 수도권 과밀문제도 해결하고 국토균형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론자들은 행정수도나 혁신도시, 기업도시와 같은 인위적인 기능의 이전과 분산은 국가경쟁력을 약화하며, 4차산업혁명 시대 에 걸맞지 않은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이라고 반박하고 나선다. 선진국인 일본이나 프랑스, 영국 등은 4차산업혁명 시대 의 도래를 맞아, 국토균형발전론이라는 허구에서 벗어나 토쿄, 파리, 런던 등 수도권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시경쟁력을 강화해 국가경쟁력 제고를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정부 기능 이전이나 혁신도시 2.0과 같은 물리적 조성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되며, 수도권 규제 역시 세계도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록히드 뇌물사건으로 실각하였지만, 만 54세에 총리직에 오른 일본 정가의 전설적 존재 다나까 가꾸에이(田中角榮)는 일본의 유명한 국토균형발전론자였다. 토쿄와 오사카를 잇는 태평양 도시산업벨트를 일본 열도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을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공업의 전국적인 재배치와 지식집약화, 전국 곳곳에 신칸센(新幹線)과 고속도로의 건설, 정보통신망의 네트워크화를 통해 도농격차와 동서격차를 없애야 한다고 나섰다.  


다나까의 일본열도개조론을 시행하기 위한 대규모 예산지출은 일본의 부동산가격을 급격하게 상승시켰다. 1980년대 토쿄의 집값은 3배로 뛰었으며, 과잉개발, 과잉투자, 과잉정부채무라는 3대 과잉 현상이 보편화하였다. 뒤를 이은 1988년 다케시다 내각은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을 개시했으며, 토쿄권의 중앙정부기관 30개, 연구기관 90개, 특수법인 70개, 국립대 10개 등 200여 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도모하였다. 전국적으로 다시 부동산 광풍이 몰아쳤으며, 뒤이어 농촌관광을 테마로 개발에 몰두했던 산간오지 마을들이 부동산 거품을 가득 안은 채 채무불이행으로 파산하면서 지방정부를 덮쳤다. 일본 중앙정부 역시 재정 악화와 경기침체를 피하지 못했으며, 결국 1991년 4월에는 부동산 버블의 붕괴가 일어났다. 토쿄의 주택가격은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으며, 담보 가치의 상실로 인한 은행 파산, 중산층의 몰락과 경치침체가 뒤를 이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원인을 두고 1985년의 엔화의 인위적인 평가절상을 도모했던 미국과 일본 간의 플라자 합의와 급격한 금리 인상 등이 언급되지만, 국가균형발전정책으로 촉발된 부동산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과잉공급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었다. 버블 붕괴로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맞게 되었으며, 세계 제2의 경제규모를 자랑했던 일본 경제의 한없는 추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토쿄 권의 주택가격은 아직도 30년 전의 주택가격의 절반 수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1)  


일본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국토균형발전론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행정수도이전계획은 2003년에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농촌지역은 대상으로 우리나라 도시재생 뉴딜정책과 유사한 지방창생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는 그 내용이 다르다. 공공기관의 이전 등에 의한 와발적 발전이 아니라, 지역이 가진 자원과 기회를 이용한 내발적 발전이 정답이라는 교훈을 과거의 정책 실패를 통해 배운 셈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차이점 중 하나는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 및 농촌지역에 대해 입지적정화계획을 수립하게 하여 사람이 모여 살 곳과 버릴 곳을 정하였다는 점이다. 입지적정화계획을 통해 역세권이나 고속버스 터미널 주변 등 교통이 편리한 구역을 도시기능유도구역으로 정해 산발적으로 흩어져 사는 지방인구를 모음과 동시에 도시기능 유도구역에만 생활인프라 정비를 시행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도시기능유도구역이 아닌 지역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인프라 정비나 투자를 시행하지 않음으로서 불필요한 과잉투자를 줄이고, 도시인프라 운영관리비용을 대폭 절감하고 있다. 도시기능유도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주민들의 반발은 격심했지만, 일본 정부는 흔들림 없이 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다른 차이점으로는 우리나라의 뉴딜 정책이 생활인프라 정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일본은 낙후지역과 토쿄 권 간의 인적교류와 정보교류에 정책의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토쿄도를 포함한 일본 수도권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인적자원과 정보를 지방에 유통해 지역의 내발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행정기능 이전, 대학 이전, 산단 조성, 생활인프라 정비에 힘쓰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비옥한 텃밭은 창의적인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강제 이전한 공공기관이나 도로, 철도, 공항, 공단 등 물리적인 건설인프라가 혁신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람들의 교류가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교류와 접촉, 익명성과 사생활이 보장되는 관용과 존중의 문화가 혁신의 텃밭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정된 동네 인적자원에 기반을 둔 근린재생형 도시재생사업은 그런 의미에서 실패를 피할 수 없는 정책이며,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 역시 창의와 혁신을 만들어내는 텃밭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에서 성공이 어려운 정책이다.  


과거 거리를 극복하기 위해 시행되었던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기관 이전, 도로, 철도, 교통, 공항 등 대형 인프라 건설은 4차 산업혁명시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텃밭 정책이 더 이상 되기 어렵다. 오히려 일본의 경험처럼 수도권과 낙후지역 간의 인적 교류와 정보 교류를 구축해 지역의 내발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역균형개발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해 시설을 건설한다 하더라도 수도권이 가진 규모의 경제 효과 – 고급문화와 고급의료서비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적 교류 – 를 만들 수도 없고, 설령 만들었다 하더라도 운영유지관리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4차산업혁명 시대 의 국토 – 살집과 먹고살고 있는 일자리가 있는 –를 만들기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을 이제 대학지방 이전이나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이 아니라, 지역의 내발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교류와 통섭의 구축으로 바뀌어야 한다. 




1)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00116/99245792/1  



정창무

현 서울공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현 국토교통부 국토정책위원회 위원
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회 시설분과 자문위원
전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25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