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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안병진] 노회찬의 미래공부 습관
소속
통합 관리자
Date
2020-11-12
게시글 내용

노회찬의 미래공부 습관

안병진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2020. 11. 12.


노회찬의 미래공부 습관



"미래의 장으로 들어가는 틈새를 찾아라” _ 오토 샤머, <본질에서 답을 찾아라> 중에서  


“돌을 대나무 숲에 던져 그 소리를 들어보라”_ 피터 웩, 박성원의 <미래공부> 중에서 


우리는 그를 ‘노박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나는 그가 차분하고 깊게 다양한 철학과 이론을 설명할 때면 경탄의 느낌으로 그의 큰 두상을 쳐다보곤 했다. 마치 그 두뇌 안에 동서고금의 지혜가 무궁무진하게 저장되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우리의 노박사, 즉 노회찬은 1년 후 진보 정당의 걸출한 정치가로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 나는 정치가를 항상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하나는 지성주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감성주의자이다. 전자가 재벌 체제에서 탈피하고자 이론적으로 고투했던 김대중이라면 후자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우리의 감정선을 건드린 김영삼이다. 노회찬은 김대중과 함께 한국의 걸출한 지성주의자 계보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치가에 대한 또 하나의 분류법이 있다. 거래적 현실주의자 대 불가능을 꿈꾸는 미래주의자의 유형이다. 전자는 그저 현실 이해관계 속에서 대세에 추종하거나 이해관계를 교환하는 유형이다. 후자는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미래로의 가능성의 틈새를 부단히 모색하며 이를 현실 실천으로 전환시키는 유형이다. 전자는 흔히 허버트 후버처럼 관리형 정치가로 분류되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되고 후자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처럼 전환적 정치가나 블라디미르 레닌처럼 혁명가 유형이 여기에 해당된다. 루즈벨트와 레닌은 규범적인 평가를 떠나서 미래로의 시대정신이 슬쩍 옷자락을 드러나자 이를 재빨리 낚아채서 각각 뉴딜과 볼세비키 체제를 구축했다. 나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노박사는 미래주의자의 유형이다. 


90년대 초반 청주 교도소에서의 일이다. 어느 날 노박사는 나에게 자신만의 신문 보는 노하우를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항상 아침에 신문을 볼 때마다 다음 날 신문에 게재된 다양한 상황과 이슈가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하면서 정독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그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전개된 현실과 자신의 전날 예측을 비교해보면서 부단히 생각을 조정해나간다고 한다. 나는 그 당시 그 노하우를 들으면서 이 사람은 정말 참 분석적이고 성실한 사람이구나 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수십 년이 흘러 다양한 경로로 미래학을 접하면서 나는 이 습관이 단지 분석적 습관만이 아니라 어쩌면 미래학자의 태도와도 너무나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은 <미래공부>라는 책에서 글 모두에 인용한 미래학의 선구자인 피터 웩의 에피소드를 소개한 바 있다. 부단히 변화하는 미래를 더 잘 예측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웩에게 한 일본 선승이 준 수수께끼 같은 화두는 대나무 숲에서의 돌을 던져 소리를 들으라는 조언이다. 처음에 황당해하던 웩은 결국 변화하는 현실을 이해하는 것은 마치 부단히 대나무 정중앙에 맞추기 위해 수많은 돌을 던지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노박사의 감옥에서의 매일 신문 읽기 훈련이야말로 피터 웩에게 깨달음을 준 선승의 대나무 숲 가르침을 자신 방식으로 실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만약 지금 내가 이해한 걸 그때 청주에서 알았다면 매일 그의 시나리오 플래닝 훈련에 동참해서 나도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 지루하고 사방이 막힌 절망적 감옥에서 장대한 미래 시나리오 플래닝을 매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신나는 오락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청주에서 나에게 재소자 강연을 요청한다면 3주짜리 미래 시나리오 플래닝 시뮬레이션이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아마 이건 전 세계에서 내가 최초로 하는 실험이 아닐까 생각하니 절로 신이 난다. 


내가 청주에서 노박사와의 경험을 통해 결국 그가 진정한 미래학자라는 걸 깨달은 또 하나의 점은 그의 실천적 태도 때문이다. 그는 감옥에서 할 일은 너무 없고 정보는 제한되어 있어서 이런 노하우를 개발한 것만은 아니다(심심하기에는 일부로 시간이 아까워 아침 식사까지 걸러서 공부하는 그이다). 단지 내일의 미래를 남들보다 더 잘 예측하기 위해 신문 시나리오 플래닝을 한 것도 아니다. 그가 이런 노하우를 만든 것은 부단히 변화하는 현실에서 미래의 더 좋은 가능성을 일찍 포착하고 이를 촉진하며 결국 그가 꿈꾸던 대안적 미래를 현실화하기 위함이다. 이후 노회찬은 선거를 통한 사회민주주의 실현의 가능성이 보이자 다른 레프트 지성들보다 더 일찍 이를 적극 포착한 사람이다. 혹은 때로는 그에게는 그저 중도 정당에 불과한 민주당이지만 예비경선이란 역동적 민심 표출의 장이 열리자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를 국민경선으로 촉진, 확장시키고자 했던 유연한 레프트이다. 지금 미국의 샌더스와 AOC(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가 기존 좌파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민주당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이를 보다 진보적 정당으로 확장시키고 있듯이 말이다. 걸출한 미래학자인 오토 샤머는 이를 ‘프리젠싱’(presensing)이라 부른다. 현재라는 단어(presence)와 미래의 가능성을 감지한다는 단어(sensing)의 결합이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열린 생각과 가슴을 통해 미래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 틈새를 전환적 리더십으로 새 흐름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요즘 들어 과거 청주에서의 추억을 소환하는 이유는 갈수록 나와 같은 일부 민주화 운동 출신의 인사들이 보이는 한계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한국 사회가 군사독재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는 큰 성취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모든 성취에는 명암이 있다. 지금 넥스트 가치와 아젠다가 절실한 민주화 이후의 시대에 기존 우리의 내면세계와 사유는 때로는 질곡으로 작용한다. 즉 오토 샤머가 프리젠싱의 반대 개념으로서 제안한 앱선싱(absensing)의 한계가 우리를 자주 가둔다. 샤머는 이 태도를 하나의 자아, 하나의 우리(우리 대 그들의 진영론), 하나의 진실에 집착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 부정적 태도는 결국 더 나은 미래로의 가능성을 열기보다는 기존 질서를 고착화시킨다. 나는 그런 점에서 지난 ‘촛불 혁명’ 이후 향후 30년의 전환적 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대들이 과연 긍정적 힘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이 앱선싱은 비단 정치 영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지식인, 기업, NGO 들 전반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기에 더 우려스럽다. 


지금 한국 사회와 세계는 낸시 프레이저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궐위의 상태이다. 즉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본격적으로 태어나고 있지 않다. 혹은 발명되고 있지만 우리들의 고정관념이 이를 발견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우리는 과거 내면세계와 철저히 작별할 때 비로소 새로운 사건이 부상할 수 있다. 살을 칼날처럼 파고드는 겨울의 추위 속에서 혼자 고독하게 신문을 뜯어 읽던 노박사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아, 그의 독방 문을 슬며시 열고 들어가 더 인간다운 미래를 꿈꾸며 같이 철학 공부를 하던 그때가 정말 그립다.  


안병진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나눔문화 이사, 지구와 사람 학술위원장
前경희대 미래문명원장, 총장실 정책실장
前경희사이버대 부총장
주요 저서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 <예정된 위기>